콧노래 부르지 말고, 쇼파에서 쉬지마라?

▲ 이용구 중앙대학교 총장


[팩트인뉴스=임준하 기자]최근 중앙대학교(총장 이용구) 청소노동자들이 근로환경 개선, 노조탄압 중단, 용역업체 교체 등을 요구하며 20일 넘게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중앙대학교는 이들의 요구에 대해 “용역업체와 노동자들 사이의 문제”라며 선긋기에 나선 것은 물론, 교내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현수막을 붙일 경우 회당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간접 강제신청까지 제기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게다가 인권 침해적 조항이 다수 포함된 용역계약서 원본이 공개되면서 정치권과 노동계, 중앙대 재학생들까지 이용구 총장을 비롯한 중앙대 측의 부적절한 대응 방식에 집단 반발하고 있다.


‘구호 외치거나 대자보 붙이면 100만원 내라’…간접강제 신청
용역계약서, ‘콧노래 부르지 말고, 쇼파에서 쉬지 마라’ 명시


최근 중앙대학교가 연일 언론의 집중 뭇매를 맞고 있다.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이 근로조건 개선과 용역업체 교체를 요구하면서 장기 파업에 나선 가운데, 중앙대 측의 부적절한 대응방식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노동계는 물론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정의당 등 정치권에서도 이번 파업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며, 중앙대 재학생과 동문들까지 나서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특히 지난달 한 중앙대 청소노동자가 중앙도서관 3층 벽에 붙인 ‘시험기간 깨끗하게 못해줘서 미안해요’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화제를 모으고, 광운대학교와 서울여대에서도 열악한 근무 환경에 고통 받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의 유사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구호 한번에 ‘100만원’


현재 중앙대는 ‘티엔에스개발’이라는 용역업체를 통해 학내 청소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즉, 직접 고용이 아닌 ‘원청’의 자격으로 청소노동자들을 간접 고용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중앙대가 노동계와 파업 사태를 두고 언론의 질타를 받는 것은 이 같은 계약 조건에 근거, 파업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직접 고용 형태가 아니므로 결국 용역업체와 청소노동자들이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것이다.


게다가 청소노동자들에게 교내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현수막을 붙이는 경우 1회에 100만원씩을 지불하라는 간접강제 신청을 제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점화된 논란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말았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중앙대는 지난해 12월 23일 총장실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던 청소노동자 37명을 상대로 ‘퇴거 및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면서 특정 행위에 대한 간접강제 신청도 함께 냈다.


청소노동자들이 ▲교내 농성·시위 ▲침구 설치·유지 및 취식 ▲앰프와 확성기 등을 이용해 연설 및 노동가요를 외치는 행위 ▲고성으로 구호를 외치는 행위 ▲비방 목적의 유인물 배포 및 피켓·벽보·현수막 게시 ▲동영상 상영 ▲학교 설비에 스티커·대자보 등을 부착하는 행위 등을 하는 경우 각 행위 1회마다 100만원씩을 지급토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점거농성은 학교의 소유권, 점유권, 시설관리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법행위”라며 “총장실 난입은 공동주거침입죄에 해당하고 불법 시위를 펼치며 학교 운영·관리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위력에의한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계속되는 점거 농성으로 신입생·편입생 선발절차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학교의 대외 신뢰도 및 이미지 추락에 대한 유·무형적 손해는 산정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차례 시정 요구에도 현재까지 점거농성은 계속되고 있다”며 “가처분 결정이 발령되더라도 간접강제를 명하지 않으면 가처분 결정 내용이 이행되지 않을 개연성은 충분하다”며 간접강제 신청 이유를 제시했다.



앞서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은 근로환경 개선, 노조탄압 중단, 총장과의 면담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17일부터 지난 1일까지 총장실 점거 농성을 벌인 바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비인간적인 근무 조건 속에서 항상 징계와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학교 측이 직접 나서서 적정인력을 확보하고 징계·해고로부터의 보호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권 침해’ 용역계약서


이번 사태가 문제가 되는 것은 비단 간접강제 신청뿐만이 아니다. 중앙대와 용역업체 사이에 맺은 용역계약서에 불법·인권 침해적 요소가 포함된 조항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및 <노컷뉴스>에 따르면 ‘미화관리 도급 계약서’는 지난해 2월 중앙대와 용역업체인 티엔에스개발 사이에 이뤄진 계약 내용을 담고 있다. 위탁사는 중앙대, 수탁사는 티엔에스개발이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이 계약서에는 캠퍼스 내·외부 미화관리 업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는 인권 침해적 ‘독소조항’으로 논란을 일으킬만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했다.


특히 ‘작업 도중 잡담이나 콧노래 금지’ ‘사무실 의자나 쇼파에서 휴식 금지’등의 규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아울러 해당 계약서는 ‘작업시간 중 교내에서 외부인사와 면담을 일절 삼간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었다.


아울러 불법적 계약 내용도 지적됐다. 근로기준법 위반이 의심되는 조항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계약서에 따르면 법정 근로 시간을 초과해 근무토록 했지만 초과 수당을 지난해 7월 말까지 지급하지 않는 등 위법 사항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해당 계약서에는 청소노동자의 학기 중 휴게시간을 제외한 주당 근무시간을 평일 40시간, 격주로 토요일 3시간 근무를 규정하고 있다.


즉 최소 한 달에 2번은 근무시간이 43시간에 달하게 되는 것이며, 이는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는 법정 근로 시간인 주당 40시간을 초과했다는 지적이다.


물론 초과근무에 대해 1.5배에 해당하는 초과수당이 지급됐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티엔에스개발 측으로부터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 받은 적이 없다고 청소노동자들은 주장했다.


정치권도 ‘주목’


청소노동자들과 중앙대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결국 정치권에서도 칼을 빼들었다. 지난 6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사태 파악에 나섰다.


▲ 캠퍼스내에 게시된 각종 항의 대자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은수미, 유은혜, 진선미 의원은 이날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 본관 총장실에서 이용구 중앙대 총장을 만나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실태 등을 지적했다.


이들은 여성 미화원이 건물 내부 청소와 건물 외곽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업무를 담당하는 ‘1인 3역 업무’를 지적하며 “건물 내부를 청소하는 여성 미화원이 낙엽 쓸기와 눈 치우기, 염화칼슘 뿌리기 등에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합원이 있는 서울 지역 12개 대학 중 건물 내부를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가 외곽 청소에 동원되는 경우는 중앙대가 유일하다.


위원회는 또 건물 내부를 청소하는 인원이 부족하다며 인원이 적절히 배치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측에 용역설계서와 계약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으며 ▲미화원의 휴식 공간 부족 ▲산재보험 및 병가 처리의 어려움 ▲쉬는 날 없는 야간 노동 등을 지적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이 총장에게 “여성 노동자에게 과중한 업무를 지시하고 산재를 처리하지 않는 등 부당 노동행위가 드러났다”며 “이는 노동부 가이드라인을 위반하는 행위이며 중앙대는 원청으로서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다”고 질타했다.


또 중앙대 측이 낸 ‘대자보 1건 당 100만원’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는 “이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바탕으로 한 행위인데 가처분 신청을 취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장은 “지적 사항에 공감하지만 현재 용역 업체 계약 만료(2월) 전에 계약을 중단하면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어 즉각 해지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법적 조치를 취한다고 하면 물러날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실제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인 것은 아니다”라며 “(가처분 취하에 관해)변호사가 검토한 뒤 조치하고 오는 10일께 노조 측과 간담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학교 측 “계약 당사자인 용역 업체 TNS와 문제 해결해야”
이 총장 “직접 고용하면 농성·파업에 직면할 것” 발언 물의


진실은 무엇


중앙대는 청소노동자 인권침해 논란을 두고 여론이 악화되자 “청소 업무 대행과 관련한 계약서 내용은 청소 용역을 계약할 때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문안”이라고 9일 해명했다.


중앙대는 8일 공개된 계약서 내용 중 ‘사무실 의자 및 소파 등에 앉아 쉬지 않도록 한다’는 문구에 대해 “근무 중 다른 사람의 의자에서 휴식을 취하지 말라는 취지”라며 “학교에서 제공한 휴게 공간을 이용하라는 뜻으로 이해해달라”고 전했다.


또 중앙대는 다른 대학의 청소 노동자 임금과 비교할 때 비슷하거나 높은 임금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부터 청소 노동자 임금을 시간당 5100원에서 5700원으로 11% 인상했으며 토요일 근무와 야간 근무 수당 등도 모두 지급했다고 강조했다. 또 노동자들의 70세 정년을 보장하고 매달 근무시간(209시간)을 지켰으며 필요시 휴일 근무 수당을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중앙대 측은 “학교는 현행법상 청소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므로 법적 결정권이 없다”면서 “청소노동자들의 복지나 처우에 대해 협력 업체와 논의·조정해오고 있지만 협력 업체의 노사 문제까지 관여하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인권위원회 진정


청소노동자들은 앞서 예고한대로 중앙대 이용구 총장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은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초헌법적 인권침해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금지행위를 중단하라”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중앙대는 제3자가 아닌 원청 사용자로써 청소 노동자들에 대한 총체적인 감독자”라며 “기본권과 인권을 비용과 편리로 겁박하고 박탈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다른 대학교에서는 대자보를 민주화 운동의 자료로 보존하는 것에 비해 중앙대는 철거로 답하고 있다”며 “중앙대가 쌓아온 이미지는 헌법과 법률로서 보장되어있는 기본권마저 무시하고 제한하는 악명의 이미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청소노동자들의 콧노래조차 금지하는 슈퍼 갑의 오만함을 버리고 모든 구성원이 행복하게 배우고 일할 수 있는 학교가 될 수 있도록 학교측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중앙대 학생들이 만든 ‘의혈 안녕하십니까’ 모임 역시 “학교가 학생들이 부착한 70여 개 대자보를 일괄 철거함으로써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날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은 “중앙대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청소 노동자 파업이나 대자보가 아니라 법의 맹점을 악용해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중앙대의 궤변”이라며 “중앙대는 근로 계약 관계라는 핑계 뒤에 숨어 소송과 고소·고발, 대자보 철거에 나설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용역계약서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어 민법상으로 무효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이라도 중앙대는 대학으로서 본분을 되찾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용구 총장 발언 ‘논란’


이용구 총장은 8일 중앙대 커뮤니티 ‘중앙인’에 ‘간접고용에 대한 총장님 메시지’란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이 총장이 남긴 글에는 “학교는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나오는 재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청소원 같은 대표적인 공급과잉의 저임금 직종은 완전 경쟁을 통한 고용, 즉 용역업체에 대한 상호 경쟁입찰을 통해서 최소의 비용을 확보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학교가 직접고용에 나선다면 업체 간 경쟁이 사라져 매번 노사협의를 통한 임금 인상은 물론 복지 확충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면서 “협의가 결렬되면 항상 이번 사태와 같은 농성과 파업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결국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장의 발언을 두고 일부 학생들은 반발에 나섰다. 이들은 청소노동자 간접 고용에 대한 입장에 반대하면서 해당 게시물에 대한 댓글을 달기 시작했던 것.


그런데 중앙대 홍보실장이 돌연 이 총장을 ‘가장’에 비유하며 학생들이 이 총장에 대한 비난을 멈춰달라는 요지의 댓글을 남겨 더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프레시안> 등에 따르면 홍보실장은 댓글을 통해 “집안의 가장이 설사 자신과 다른 언행을 했다고 해서 비아냥거리고 품위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까. 적어도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가족이라면 안타깝고 화가 난다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요”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 총장을 ‘가장’으로, 이 총장의 의견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가족’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전근대적인 논리를 동원해 학생들의 분노를 사게 된 것이다.


중앙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 주 배포한 해명 자료 이외에 학교 측의 공식 입장은 없다"면서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청소노동자들과의 간담회 등도 아직 공식적으로 계획된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이 한 달 가까이 이어져오고 있는 가운데 결국 이번 사태는 이 총장을 비롯한 중앙대 측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 없이는 합의 도출까지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중앙대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극적인 태도 전환을 통해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을 포용, 더 큰 도약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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