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이모저모] 주주없는 주총, yes만 외쳐

2013-03-26     남세현

15・22일 ‘슈퍼주총데이’ 열려…‘법정구속・90세 최고령’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


회장 ‘문어발’ 겸직, 오너일가 ‘족벌경영’ 문제…상법상 문제없어 ‘비효율’ 논란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3월, 상장사들의 '주주총회'가 각지에서 진행됐다. 국내의 10대기업을 비롯한 상장사들이 15일과 22ㄹ일 이른바 '슈퍼 주총데이'를 개최하고 신규 이사진, 정관 개정, 향후 사업계획 등을 의결했다.


“지난해 투자 성적은 평균 이하였다.”


“소콜에게 언제 주식을 샀는지 물어보지 않은 것은 분명히 나의 큰 실수였다. 소콜 문제는 설명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전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해마다 열리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에서 자신의 경영 성과를 가감 없이 털어놓기로 유명하다.


주총이 열리는 날 역시 모든 이들이 참석해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휴일 토요일로 날짜를 잡았다. 이에 버크셔 해서웨이가 위치한 미국의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는 매년 3만여명의 넘는 주주들이 몰려와 작은 마을을 온통 ‘주총 축제’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주주들은 버핏에게 직접 질문하는 기회를 잡고자 주총 시즌이 오기 몇 주 전부터 항공편과 숙박시설 등을 예약하고 버핏 역시 이들을 초대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그래서일까. 소액주주들의 실적에 대한 가열한 비판과 내부거래 등의 난감한 의혹을 묻는 질문에도 버핏은 답변하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오마하에서 주총 축제가 열리듯 우리나라에서도 주총이 열린다.


특히 매년 3월이면 상장된 모든 기업들이 주총을 열고 주주들에게 경영성과와 향후계획 등을 알리기 때문에 주주들의 눈은 온통 상장사의 주총날로 향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총이 ‘토요일’에 개최되는 반면 우리나라 상장사의 약 40%가 ‘금요일’ 오전 9시에 주총을 개최한다는 것.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금요일에 주총을 여는 상장사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덕분에 ‘슈퍼 주총데이’라는 기업문화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올해에도 역시 지난 15일과 22일 상장사들의 ‘슈퍼 주총데이’가 열렸다.


축제와도 같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총과 달리 국내 대다수의 상장사들은 금요일 오전 10시를 전후로 시작된 주총을 빠르면 20분, 최대 2시간 정도에서 끝을 냈다. 문제가 제기됐던 안건의 대부분이 ‘만장일치’로 표결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액주주들의 의견은 주총 밖 집회에서 한낱 의견에 그쳤고, 상장사의 오너 대부분은 불참하거나 참석 후에도 경영성과를 자랑하는데 온 시간을 소비했다.


특히 이날 주총을 면밀히 살펴보면, 상장사의 대부분이 이사진 선임건에서 ‘경제민주화’를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줘 세간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 오너일가, 그룹 경영진, 검찰 및 법조계 출신 등이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사진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


‘책임경영’ 내건 이사진 선임…전문성 ‘글쎄~’


15일과 22일 양일간 개최된 재벌기업의 주총에선 오너일가의 경영참여 확대가 눈에 띄게 이뤄졌다.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법정구속된 회장과 90세의 최고령 회장, 오너일가의 3・4세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들이 사내이사에 재선임되거나 신규선임 됐다.


22일 SKC&C는 제22기 정기주총에서 최태원 SK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 했다고 밝혔다. 이날 주총은 최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건에 대한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조용한 가운데 안건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20여분 만에 끝이 났다.


최 회장이 자금 횡령 혐의로 법정구속된 상태였지만, 그는 만장일치로 사내이사에 재선임 됐다. SKC&C는 “최 회장은 불확실한 경제상황에서 글로벌 개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그동안 의미 있는 성과를 많이 달성해왔다”며 “진행중인 글로벌 사업 성공을 위해 최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이 필수적”이라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 1월 회사자금 46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구속 됐다. 이에 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알려지자 일각에선 최 회장이 기업가치가 올라간 뒤 주식을 매각해 이익을 취한 경력이 있다며 대표이사 선임안에 우려를 표하는 시각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날 최 회장이 SKC&C 사내이사에 재선임 되면서 기존 이사를 맡고 있던 ㈜SK와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등 총 4개사에 법정구속 회장의 이름이 이사진에 오르게 됐다.


최 회장의 이사진 선임 논란을 뒤로 하고 창업 1세대의 이사진 선임도 재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롯데쇼핑은 22일 오전 10시 롯데마트 영등포점 인재개발원에서 주총을 열고 신 총괄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주총 의장을 맡은 신헌 롯데백화점 사장은 “롯데쇼핑이 세계적인 유통기업으로 나아가는 시기”라며 “기존 인력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돼 신격호 회장을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했다”고 말했다.


사측의 입장과 달리 시민단체 등은 신 총괄회장이 1922년생으로 92세의 고령이자 다수의 계열사 이사직을 겸직하고 있단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는 “고령의 신 회장이 맡고 있는 자리가 너무 많아 이사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실제 신 총괄회장은 롯데쇼핑을 비롯해 롯데제과, 호텔롯데, 롯데건설 등 6개 계열사의 사내이사(또는 대표이사)와 대홍기획, 롯데리아, 롯데알미늄 등 6개 계열사의 기타비상무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또한, 롯데쇼핑의 사내이사 5명 중 3명이 전부 오너일가란 점 역시 세간의 비판을 샀다.


신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 등이 사내이사에 자리해 오너일가가 전체 사내이사의 60%를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좋은기업지배연구소는 “총수 일가가 이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져 회사의 이사회의 독립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며 신 총괄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오너일가의 족벌경영 문제는 롯데그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번 주총에서 오너일가 부자를 나란히 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 사내이사로 앉혔다.


22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계열사 현대모비스 주총에서 사내이사에 재선임 돼 현대차를 비롯해 현대제철, 현대건설 등의 6개 회사 이사진에 이름을 올렸다.


아들 정의선 부회장 역시 현대차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을 뿐만 아니라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현대오토에버 등 6개사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이밖에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이 사내이사에 재선임 됐으며 이들 회장 대부분은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일각에선 그룹 총수의 사내이사 겸직이 ‘책임경영’을 유도하기 때문에 독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과도한 겸임이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곳곳에서 제기됐다.


이들 중에는 심지어 과도한 계열사 겸직이 오너일가의 주머니 불리기로 이용될 수 있음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우려와 달리 국내 상법상 사내이사 겸직의 적정선은 정해진 바 없어 이를 제재할 조치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사외이사의 경우 겸직 2개 가능)


고위관료 출신, ‘내 자리’ 찾기 바빠


사내이사에서 ‘오너일가’의 족벌경영, 겸직 등이 논란의 대상이었다면 사외이사는 단연 ‘출신성분’이 문제가 됐다. 정부 및 법조계 등의 고위관료 출신들이 주요 기업의 사외이사 목록에 대거 등장하면서 그 선임 배경에 의혹을 산 것.


이번 슈퍼 주총데이에선 전직 검찰총장, 부장판사, 국회의원, 국세청장, 공정위원장, 법무부 장관 등 내로라하는 고위급 인사들이 신규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15일 삼성전자는 도덕적 논란이 제기됐던 송광수 전 검찰총장을 사외이사에 영입했다.


앞서 좋은기업지배연구소는 “송 전 검찰총장이 고문으로 있는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지난해 1심 판결이 끝난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권 소송에서 애플을 대리한 바 있다”며 사외이사 선임을 반대했다.


연구소는 또한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LG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의 OLED관련 특허소송에서 LG디스플레이를 대리하고 있는 점을 들어 “주요소송에서 소송 상대방을 변호하는 입장에 있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의 인사가 삼성전자의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것은 이해상충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반대를 권고한다”고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송 전 총장은 검찰에 오래 몸담으셨던 분으로 준법 경영에 나서고 있는 삼성전자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원안 찬성을 희망했고 주주들 역시 별다른 이견 없이 원안을 찬성해 송 전 총장이 사외이사에 선임될 수 있었다.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도 대기업 사내이사에 낙점됐다. 이 전 법무장관은 장관직에서 퇴직한 시점이 2011년 8월로 채 2년을 넘지 못했지만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취업 승인을 받으면서 22일 열린 GS의 주총에서 사외이사에 신규 선임됐다.


퇴직 기간은 차치하고서 이 전 장관이 검찰 고위 간부로 재직했을 당시 GS그룹 계열사의 검찰 수사가 이뤄졌단 점에서 일부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밖에도 이번 주총에선 공정위와 국세청 등 기업의 경영활동을 주물렀던 전직 기관장들의 사외이사 영입이 두드러졌다.


현대제철과 신세계는 각각 정호열 전 공정거래위원장과 손인옥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제철의 공정위원장 ‘모시기’가 정부의 카르텔(담합) 제재 방침에 대한 선제적 대응력 강화와 대관 네트워크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는 이들이 많다.


신세계 역시 손인옥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영입함으로써 최근 부당거래 관련 조사와 유통업계에 부는 ‘경제민주화’ 바람에 맞서기 위한 준비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CJ제일제당, 롯데제과 등 식품업체와 CJ CGV, 롯데케미칼 등이 지방국세청장을 대거 영입해 업계로부터 정부의 강도 높은 물가관리에 대응하기 위한 ‘전관예우’적 인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렇듯 국내 상장사 대부분이 시민단체의 반발과 소액주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사진 선임 및 주요안건 등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자 주총을 지켜보는 관계자들은 “한국식 주총은 통과의례적 성격이 짙다”며 평가절하했다.


이들은 특히 우리나라의 주총이 금요일에 몰려 슈퍼주총데이를 이루는 까닭은 소액주주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함이라며 한국식 주총에 우려를 표했다./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