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노동계가 ‘현대차’에 방문한 까닭?
지난 16일 현대자동차 주주총회를 앞두고 미국의 노동운동 및 민권운동 지도자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현대자동차가 진출해 있는 앨라배마 주에서 최근 시행되고 있는 인종차별적 반이민법 (HB56)에 반대하는 미국시민들의 목소리를 주주들에게 전달하고, 현대차 역시 인권 침해를 중단하고 인종차별 없는 앨라배마 만드는 데 동참하기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앨라배마 반이민법은 지방경찰이 외국인처럼 보이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검문을 실시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준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다임러 클라이슬러사 임원과 혼다자동차 직원이 검문을 받고 주정부가 요구하는 이민서류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이 법은 특히 사회서비스와 교육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한편, 미등록이주자를 돕는 것도 범죄시하고 있는 까닭에 ‘인권침해’ 소지가 높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즉 미등록이주자를 자동차에 태우거나 집에 숨겨주는 것, 일을 시키거나 집을 세내는 행위는 경범죄로 처벌된다는 것이다.
앨라배마 반이민법은 이밖에도 ‘반인권적’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 법은 만 18세 이상의 주민은 공공서비스를 받을 때 미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음을 주정부에 증명해야 한다. 미등록이민자들이 앨라배마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이력서를 제출하는 것은 경범죄로 취급된다.
아울러 이법은 교육권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공립 초중학교는 학생들의 체류신분을 확인하도록 돼 있다. 유색인 학생들은 교사로부터 “너는 불법체류자냐?”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 대선을 앞두고 보수세력의 ‘반이민’ 선동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들은 미국 시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는 실업과 빈곤의 원인이 마치 ‘불법이민자’ 때문인 양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를 점령한 99%가 외치듯이 문제는 불법이민자가 아닌 1%의 이익만을 옹호하며 경제위기의 부담을 모조리 일반 시민들에게 전가하는 금융세계화이며,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위기에 대한 잘못된 해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결국 AFL-CIO(미국 노동 총연맹 산업별 조합회의)를 비롯한 미국의 14개 노동조합 및 민권운동 단체들은 ‘HB56 철폐 연대행동(Repeal HB56 Coalition)’을 결성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지난 3월 4~9일에는 셀마시에서 몽고메리시까지 86km에 이르는 거리를 행진했다.
또한 앨라배마주에 공장을 짓고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다임러 클라이슬러, 혼다자동차가 이러한 캠페인에 같은 목소리를 낼 것을 촉구 중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대표기업, 현대자동차는 어떤 입장일까.
현대차는 이와 관련 지난 1월19일 연대행동에 참여하는 14개 단체로부터 면담요청을 받고도 면담을 거부하다가 2월29일 CNN에 “이민법에 대해 어느 쪽 입장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웨이드 핸더슨(Wade Henderson) 시민권.인권에 관한 리더쉽 컨퍼런스 대표/CEO와 엘리세오 메디나(Eliseo Medina) 북미서비스노조(SEIU) 사무총장이 직접 현대자동차 주주총회에 참석, 현대자동차의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고 나선 셈이다.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앨라배마 노동자의 노동력으로 이익을 벌어들이는 현대자동차가 인종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인 HB56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현대차를 압박했다.
이들은 현대차 주주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현대 측이 이 법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취하지 않겠다고 한 결정은 귀사의 앨라배마 생산 시설 노동자들과 인근의 이민자 지역사회에 큰 혼란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이 차별법을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이 같이 공개적으로 중립 입장을 취한 것은 현대의 주 소비자인 이민자들을 배신한 행위이며, 특히 미국 내 자동차 구입 소비자 중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라티노 커뮤니티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미국에 있는 모든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현대 또한 기업 환경 및 귀사의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 제정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 있고 또한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귀사의 직원, 소비자 및 귀사가 수호한다고 약속한 민권에 악영향을 미치는 이 법에 대해서는 앨라배마 법에 따라 인권 침해가 자행되는 방향으로 귀사의 임원들이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현대는 기업의 장기적 수익성이 환경 보호 및 사회 정의와 결합하여 이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글로벌 경제에 대해 정의를 내린 글로벌 보고 이니셔티브(Global Reporting Initiative)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HB56은 UN의 인권 표준 및 귀사의 기업 선언서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가 밝힌 내용 등에 따르면 현대는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으로 현대는 앨라배마 주에서 생산한 소나타, 엘란트라를 2012년 1월 한 달 동안에만 총 2만5309대를 판매했다. 부품 공급업체까지 합할 경우, 현대는 앨라배마 주에서 주요 고용기업이다.
현대는 특히 앨라배마 주 정부로부터 막대한 세금 혜택을 받아 앨라배마 공장의 설립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노동계 한 관계자는 인터뷰에서 “현대 및 기타 제조업체들은 앨라배마 주가 노동자 보호에 있어 미국 내에서 가장 악명 높은 주이기 때문에 이 곳을 공장 시설의 위치로 선택한 것”이라면서 “앨라배마 주는 미국의 작은 주로, 1960년대에 발생한 시민 및 인권에 대한 격렬한 시위의 장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대는 앨라배마 주에서 막대한 정치력,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만일 현대 및 기타 외국계 기업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사용했다면 이 인종차별적인 HB 56 법이 거부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면서 “아시아계 미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라틴계, 기독교 신자 및 기타 집단을 대표하는 노동조합 및 단체들이 현대 측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대표와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현대 측은 이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해당 주에서 정한 법에 대해 기업이 관여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며 "어느 쪽 입장도 취하지 않는다"고 공식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