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 ‘취산화서(聚散花序)’와 모리조 ‘수국(두 자매)’

[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2022-05-30     심상훈

나이 오십, 지천명(知天命)이 되어서야 사람은 변심이 ‘나’인줄 깨닫는다. 당신의 시선은 수국인 채 나에게 왔다는 것을 겨우 간수하며 간신히 동공에 눈부처를 허락한다. 시선이 오고가는 것, 즉 취산(聚散)에 숨죽인다. 쉽게 일희일비(一喜一悲)로 ‘당신’을 향해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천명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 깨달음을 53세의 화가 모리조는 이웃집 두 자매와 수국을 통해서 어느 날, 이해한 것이다.

취산화서/송재학

수국 곁에 내가 있고 당신이 왔다 당신의 시선은 수국

인 채 나에게 왔다 수국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잠깐 숨죽

이는 흑백사진이다 당신과 나는 수국의 그늘을 입에 물

었다 정지 화면 동안 수국의 꽃색은 창백하다 왜 수국이

수시로 변하는지 서로 알기에 어슬한 꽃무늬를 얻었다

한 뼘만큼 살이 닿았는데 꽃잎도 사람도 동공마다 물고

기 비늘이 얼비쳤다 같은 공기 같은 물속이다

베르트 모리조, (수국(두 자매)),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수국의 꽃차례는,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서 그 끝에 꽃이 핀다.” (송재학, 《슬프다 풀 끗혜 이슬》, 9쪽 참조)

취산의 미학, 오십의 수국

송재학(宋在學, 1955~ )의 시 「취산화서」를 마주하면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가 그린 그림 <수국(두 자매)>(1894년 作)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금발의 언니는 손뜨개를 잠깐 무릎에 놓아둔다. 흑발의 동생 외출을 돕고자 몸을 살짝 틀어 두 손으로 뒤에서 머리 장식을 지금 매만진다. 두 자매의 입술은 닫혔다. 침묵과 고요의 모습이다. 모리조는 두 여인의 친밀함을 드러내는 장치로 화면 왼쪽에 1미터 쯤 되어 보이는 청색 꽃 수국을 같은 톤의 도자기 화분에다 녹색 이파리와 함께 그려냈다.

금발 언니의 패션은 얇은 흰색 원피스인데 헤어와 잘 맞는 금빛이 세련미를 생기로 더해준다. 흑발 동생의 패션은 가슴이 파인 핑크빛 원피스인데 파스텔 톤 질감이 특히 돋보인다. 손뜨개를 하다 말고, 뒤에서 머리 장식을 돕는 언니와 애인을 만나고자 자기를 한껏 예쁘게 단장한 동생. 이 두 자매의 친밀하고 익숙한 나날의 풍경은 어느 날, 오십의 화가 모리조로 하여금, 언니 애드마(<요람>의 모델)를 사무치게 쳐다보도록 자극했고 마침내 동생 입장에서 붓을 들어 캔버스에 채색하도록 일깨웠을 테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제목은 ‘수국’으로 한정되지 아니한다. ‘두 자매’로도 확장되기 때문이다.

모리조의 <수국(두 자매)>은 파리에서 미학을 공부하고 꼬박 십일 년을 생활한 적도 있는 이영선 작가의 책에 나온다. 이 그림을, 필자는 난생 처음 보았다. 이를 고백한다. 여하튼 이영선의 해설에서 우리는 작품 제목에 ‘두 자매’를 넣은 까닭을 감히 짐작한다. 모리조 못지않은 화가의 재능을 가졌던 ‘언니 애드마’를 언급한 대목을 바라보자. 그 구절에서 우리는 저절로 수긍한다. 시인한다. 이것에 독자로서 가볍게 산책하며 어느새 그림을 보는 안목 지점에 가까스로 도착한다. 참고로 수국의 꽃말이 ‘처녀의 꿈’인 것도 살펴 상기하자.

그녀의 그림 대부분은 가정의 평화로운 정경이나 어머니와 아이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특유의 섬세함과 파스텔 톤의 풍부한 색채를 통해 유화를 꼭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하게 표현해 낸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정부분 과소평가되었고, 일부 평론가들은 그녀를 종종 모델과 혼동하기도 했다. 모리조에게는 어릴 때부터 함께 그림을 그렸던 언니 애드마가 있었다. 그녀 못지않은 재능을 지녔지만 결혼과 함께 화가의 꿈을 접었다. 반면 모리조는 끝까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화가로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인상주의를 이끈 숨은 진주’라는 수식을 얻었다. (이영선, 《프랑스 미술관 산책》, 91쪽 참조)

그러니까 송재학의 시에서 ‘당신과 나’는 모리조의 그림에서 보자면 ‘두 자매’로 메타포가 나타난다. 언니와 동생. 그들 곁에 ‘수국’이 존재한다. 시 제목에서 ‘취산(聚散)’은 ‘모이고 흩어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처녀(총각)로서 꿈꿨던 이상·희망·사랑·가족·친구 등이 ‘화서(花序)’의 때에 꽃처럼 줄기나 가지에 붙어 있는 상태와 같이 잔뜩 오고 모여든다. 그러다가 이 시기가 모두 지나고 나면 “같은 공기 같은 물속”이었던 시간으로 과거의 추억만을 간직하는 “흑백사진”이 되어 산산이 ‘나의 전성기’는 소멸되어 흩어진다.

화양연화. 꽃 같은 영광의 시절은 어쩌면 “정지 화면 동안”만 당신에게 시간을 허락한다. 청춘남녀의 꿈과 사랑도 그렇긴 마찬가지. 그 영광은 차마 영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시로 변하는” 관계를 수용하며 초래한다. 또한 인간관계는 가족, 형제, 친구, 애인 등을 막론하고 “서로 알기에 어슬한 꽃무늬를 얻”는 것으로 차츰차츰 전락한다. 해서 시인은 말하길 우리가 아는 사랑이란 “한 뼘만큼 살이 닿았”던 기억으로 마침내 당신을 노화(老化)의 벼랑으로 결국엔 내모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렇다. 당신과 나, 사이의 사랑의 확인은 “동공마다 물고기 비늘이 얼비”치는 눈부처일 때가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국 곁에 내가 있고 당신이 와”야만 한다. 그리하여 “당신의 시선이 수국인 채 나에게 와”야지만 당신과 나는 “수국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잠깐 숨죽”이는 사랑의 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란 것도 “같은 공기 같은 물속”의 인연을 부여하는 수국의 운명처럼 취산화서(聚散花序)의 과정(過廷)을 뒤따른다. 여기에서 그 누구도 저항이란 속수무책, 아무런 소용없다.

베르트 모리조, (부지발에서 딸과 함께 있는 외젠 마네),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는 이름처럼 모네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랑주리 못지않은 알찬 구성을 자랑한다. 모네 외에도 모리조, 드가, 고갱, 피사로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300여 점이 넘는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미술관보다 아담한 규모라 그런지 곳곳을 둘러봐도 큰 힘이 들지 않는, 신기한 힘을 가졌다. (중략) 마르모탕을 찾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쁨은 베르트 모리조의 다양한 컬렉션이다. 모리조의 딸 줄리 마네와 그녀의 아들 드니 루오의 기증 덕분이다. (중략) <부지발에서 딸과 함께 있는 외젠 마네>는 엄마이자 아내인 모리조가 남편이자 아빠인 외젠 마네가 정원 벤치에 앉아 딸을 지켜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외젠 뒤로 만발한 꽃들과 어린 소녀의 표정에는 생기가 넘쳐흐르지만 주인공의 모습은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모리조에게 외젠은 늘 한결같고 헌신적인 남편이었다. 모리조의 화가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아내 옆에서 정성껏 딸을 보살폈다. (중략) 1893년 외젠과 영영 이별한 모리조는 블로뉴 숲 근처에 새로 마련한 화실에 틀어박혀 온종일 그림에 열중했다. (이영선, 《프랑스 미술관 산책》, 132~151쪽 참조)

모리조가 1881년에 그린 <부지발에서 딸과 함께 있는 외젠 마네>의 그림을 보노라면 요즘의 가든 카페에서 젊은 아빠들 모습이 연상된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가든 카페 마노르블랑(Manor Blanc)에는 노지 수국이 지금 한창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다고 그런다. 주말을 이용해 양평 강하면 전수리에 위치한 가든 한정식집 ‘참좋은생각’에 다녀왔다. 그곳 벤치에 앉아 수국을 구경하다 모리조의 그림을 생각하고는 피식 웃다가 속으로 나도 모르게 중얼댔다. 아, 취산화서……

나무박사 박상진 교수의 ‘수국’에 대한 설명이 쉽고 좋아서 여기에다 옮겨 소개한다. 다음이 그것이다.

수국의 한자 이름은 수구화(繡毬花)인데,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이란 의미다. 옛사람들이 나무 이름을 붙일 때는 특징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금세 알 수 있게 하여 감탄을 자아낸다. 수구화는 모란처럼 화려한 꽃이 아니라 잔잔하고 편안함을 주는 꽃이다. 꽃 이름은 수구화에서 수국화, 수국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중략) 오늘날 학명에 식물이름을 붙인 명명자(命名者)로 흔히 만나게 되는 네덜란드인 주카르노(Zucarnii)는 당시 약관 28세의 나이에 식물조사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와 있다가 오타기라는 기생과 사랑에 빠졌다. (중략) 오래지 않아 변심한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다. 가슴앓이를 하던 주카르느는 수국의 학명에 오타기의 높임말을 서양식으로 표기한 otaksa를 넣어 변심한 애인의 이름을 만세에 전해지게 했다. 아마도 변심한 애인처럼 수국의 꽃은 처음 필 때는 연한 보라색이던 것이 푸른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연분홍빛으로, 피는 시기에 따라 색깔을 달리 하기 때문이리라. 사랑의 배신자에 대한 복수로는 멋있고 낭만적인지, 아니면 조금은 악의적인 보복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 1》, 137~139쪽 참조)

앞에서 수국의 꽃말을 ‘처녀의 꿈’이라고 했는데 ‘변심’도 아울러 꽃말로 펼쳐진다. 사랑은 움직인다고 했던가. 여자의 마음과 사랑은 무시로 빛깔이 수국처럼 변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앞의 송재학 시에서 “당신의 시선은 수국인 채 나에게 왔다”라는 구절에서 ‘당신의 시선’은 ‘나의 마음’을 일컫는다. 수국처럼 우리의 진심도 세월을 따라, 인연을 좇아 변화를 거듭한다. 또한 “같은 공기 같은 물속”의 수국처럼, 사람의 관계도 같은 기질, 같은 핏줄에 이끌림은 자연스럽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면, 겉모습이야 어쩔 수 없이 변화를 거듭하더라도 속마음, 즉 그 사람만의 향기는 중년을 맞이하더라도 바뀌지 말았으면 싶어진다. 더욱이 타인을 시샘하고 질투하며 부러워하는 데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길, 나는 희망한다.

인문학자 김경집 교수가 쓴 《인생의 밑줄》이란 책에 좋은 내용이 있어 연필로 밑줄 친 적이 있다.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누군가 이룬 성취, 성공, 권력, 명예 등은 그저 껍데기 옷에 불과하다. 아무나 이루는 건 아니니 존경할 일이지만 ‘사람’에 대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사람의 향기다. 대단한 걸 이루지 못하고 살아온 삶이,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주눅 들 것 없다. 그런 성취는 없어도 사람을 정중하고 따뜻하게 대하며 겸손할 수만 있어도 그 향기는 감출 수 없다. 향기를 지닌 사람이 아름답다. 중년의 나이는 그걸 정돈하고 모자란 부분은 채워나갈 전환의 시기다. (같은 책, 129쪽 참조)

수국을 자세히 보면, 외관이 별로라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장미, 모란, 복사꽃처럼 화려하거나 커다란 성취를 일궈낸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화려함과 성취를 자랑하는 겉모습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수국은 송이송이 합심이 장난 아니다. 이 합심(合心)은 그래서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 같은 그림 속 언니의 마음을 닮고 그늘로 드리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뒤에서 조용히 ‘나’를 도와주고 지지하는 이웃, 친구, 형제, 가족의 끈을 함부로 놓지 말아야 한다. 인연을 소중하게 다루되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그들에게 화려한 맛을 기대하긴 멀고도 멀어서 요원하다. 하지만 ‘그들’은 오래가는 향기를 지닌 사람일 경우가 상대적이나 많다. 이렇듯 상대적인 까닭은 나의 편견과 선입견에서 대개는 비롯된다. 그러니까 내 탓이다. 이게 사이의 관계를 가로막는 문제를 일으킨다.

나이 오십, 지천명(知天命)이 되어서야 사람은 변심이 ‘나’인줄 깨닫는다. 당신의 시선은 수국인 채 나에게 왔다는 것을 겨우 간수하며 간신히 동공에 눈부처를 허락한다. 시선이 오고가는 것, 즉 취산(聚散)에 숨죽인다. 쉽게 일희일비(一喜一悲)로 ‘당신’을 향해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천명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 깨달음을 53세의 화가 모리조는 이웃집 두 자매와 수국을 통해서 어느 날, 이해한 것이다.

◆ 참고문헌

송재학, 《슬프다 풀 끗혜 이슬》, 문학과지성사, 2019. 9쪽 참조. 이영선, 《프랑스 미술관 산책》, 시공아트, 2016. 91, 132~151쪽 참조.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 1》, 김영사, 2011. 137~140쪽 참조. 김경집, 《인생의 밑줄》, 한겨레출판, 2019. 129쪽 참조. ylmfa9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