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산책’와 제임스 티소 ‘공원 벤치’
[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내가 최애하며 자주 산책하는 코스가 있다. 경기도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연꽃마을에서 시작해서 머루터널을 지나고 강가에 느티나무와 직면한다. 그러다가 토끼섬을 한 바퀴 돌고는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다산생태공원 목적지에 닿는 하루는 마냥 행복하다. 다산생태공원은 북한강을 끼고 있는데 특히 연꽃과 나무 푸르른 잔디 흰 구름이 흠모하는 강물과 함께 돋보인다.
산책/조병화
참으로 당신과 함께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앉고 싶은 잔디였습니다
당신과 함께 걷다 앉았다 하고 싶은
나무 골목길 분수의 잔디
노란 밀감나무 아래 빈 벤치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누워 있고 싶은 남국의 꽃밭
마냥 세워 푸르기만한 꽃밭
내 마음은 솔개미처럼 양명산 중턱
따스한 하늘에 걸려 날개질 치며
만나다 헤어질 그 사람들이 또 그리워들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영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영 앉아 있고 싶은 잔디였습니다
“시는 늘 우리에게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닌 것 같은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황현산, 《우물에서 하늘 보기》, 8쪽 참조)
당신을 부르는 시와 그림, 산책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말에서 ‘시’를 빼고 ‘그림’을 넣어도 말이 되긴 된다. 가령, 시인 조병화(趙炳華, 1921~2003) 선생의「산책」이란 명시에 녹아들어 물끄러미 쳐다보면 화가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1836~1902)의 명화 <공원 벤치>가 그려지며 떠오른다. 티소의 그림들은 시종일관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닌 것 같은 다른 시간, 환상의 세계를 그림의 힘으로 우리에게 기꺼이 보여준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해설은 이랬다. 그림 <공원 벤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다음이 그것이다.
아름답고 화창한 봄날이다. 어머니와 아이들이 벤치에 앉아 신선한 공기를 즐기고 있다.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어 보이는 이들의 표정에서 행복은 영원히 이 가족 곁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누구나 꿈꿔 볼 만한, 평화롭고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다. 이렇듯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그림이지만, 그러나 제임스 티소의 <공원 벤치>는 겉으로 드러난 대로 평화와 행복만을 담고 있는 작품은 아니다. 슬픔과 고통 또한 깊이 간직한 그림이다. 그 슬픔과 고통의 주인공은 이 그림의 모델인 캐슬린 뉴턴(Kathleen Newton)과 이 그림을 그린 제임스 티소 두 사람이다. (이주헌, 《그리다, 너를-화가가 사랑한 모델》, 101쪽 참조)
앞의 조병화 시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당신’은 아무래도 흔해빠진 ‘이별’이 아닌 ‘사별’로서 존재감이 무겁게 형성된다. 시행에 펼쳐지는 종결어미 “~이었습니다”와 “였습니다”가 무릇 반복되며 도달,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는가. “참으로 당신과 함께 걷고 싶은 길”과 “참으로 당신과 함께 앉고 싶은 잔디”로 대변되는 산책의 명소는 시적 화자, 혼자의 몫으로 추억되며 남겨진다. 시적 여운이 티소의 그림과 같이 겉은 정말 행복하나 속은 ‘슬픔과 고통 또한 깊이 간직한’ 시로 독자에게 수렴된다. 이는 시의 결이 지닌 또 다른 매력이다.
조병화의 「산책」에 대해 김옥림 시인은 책에서 이렇게 해설을 달았다. 다음이 그것이다.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함께 잔디밭에 앉아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무척 감사한 일이지요. 다정한 모습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산책하는 남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명화보다 아름답습니다. (중략) 조병화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걷고 싶은 길’과 함께 ‘앉고 싶은 잔디’를 통해 소박하지만 구체적인 표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랑을 하며 산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인생에 있어 소중한 행복이며 가치입니다. (김옥림, 《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55쪽 참조)
티소와 캐슬린이 처음 만나 서로 열렬히 사랑한 때는 1876년.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담은 <공원 벤치>는 1882년 작품인데 그 해에 폐결핵으로 캐슬린은 사망했다. 따라서 혼자가 된 티소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영국을 떠나서 프랑스로 도로 건너갔다. 아무튼 <공원 벤치>는 캐슬린이 죽기 전에 구상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은 티소가 파리로 돌아간 뒤에 가능했고, 이 작품을 너무 애정한 나머지 티소는 타인에게 절대로 팔지 않고 40년 여생 동안 개인 소장을 했다고 이야기는 전해진다.
이 그림에 대한 이주헌의 해박한 보충 설명을 보자. 다음이 그것이다. 그림 속에서 건강한 시절의 캐슬린이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아들 세실의 손을 살포시 잡고 있다. 뮤리엘은 엄마의 등에 기대 그 푸근한 사랑을 넉넉하게 즐기고 있다. 두 아이는 비록 자신들의 생부를 제대로 모르지만 어머니의 사랑만으로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다. 사랑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은근히 상기시키는 듯한 그림이다. 오른쪽 벤치 등받이에 얼굴을 묻은 수줍은 소녀는 캐슬린의 조카, 즉 언니의 딸 릴리안이다. 티소를 바라보는 이 아이의 눈빛도 따뜻한 신뢰로 충만하다. 티소는 캐슬린이 그녀에게 쏟아진 세상의 비난과 오해를 다 잊고 저승에서만큼은 이 그림에서처럼 늘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내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이주헌, 《그리다, 너를-화가가 사랑한 모델》, 108~111쪽 참조)
조병화 시에 대한 김옥림의 해설을 참고하자면, 이 시의 행복감이 고스란히 어울리는 그림으로는 <공원 벤치> 보다는 <10월>이 더 적격이다. 먼저 그림 <10월>부터 보자.
황금빛 나뭇잎이 가을을 예고한다. 황금빛 배경과 검정빛깔 모델의 대비는 강렬한 시선을 유도한다. 그림 속 모델인 캐슬린은 지금 숲속 산책길에서 검정 하이힐로 낙엽을 밟고 화가, 티소를 향해 사랑스러운 표정을 연출한다. 걷다 말고, 뒤돌아 선 그녀의 실루엣과 얼굴 표정이 어쩐지 행복으로 기뻐서 충만한 듯하고 사뭇 귀여워서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림에서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는 않으나,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림의 구성 상, 모델 앞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남자가 있어 모델을 향해 뜨거운 시선을 친밀하게 건네주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 한 남자는 화가인 티소를 말함이다.
참고로 <10월>은 1877년 작품이다. 그러니까 두 연인이 한창 뜨겁게 사랑을 하던 그 시기에 그림은 그려진 것이다. 오르막의 길을 여유 있게 산책하는 캐슬린의 검정빛깔 원피스를 자세히 보면, 낡아빠진 책이 옆구리에 나타난다. 추측컨대, 그것은 당시의 유명한 시인이 펴낸 한 권의 시집일 것이다.
내가 최애하며 자주 산책하는 코스가 있다. 경기도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연꽃마을에서 시작해서 머루터널을 지나고 강가에 느티나무와 직면한다. 그러다가 토끼섬을 한 바퀴 돌고는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다산생태공원 목적지에 닿는 하루는 마냥 행복하다. 다산생태공원은 북한강을 끼고 있는데 특히 연꽃과 나무 푸르른 잔디 흰 구름이 흠모하는 강물과 함께 돋보인다.
봄 여름 가을. 산책하려고 그곳에 가면 티소의 <공원 벤치>에 등장할 법한 가족들의 평화롭고 단란한 모습이 적잖이 보이고, 심지어는 티소가 그린 <10월>에 나오는 그림 속 모델처럼 화려한 원피스 옷차림의 높은 하이힐을 신고 미끄러지듯 잘 걷는 미녀들도 어쩌다 가끔은 우연히 마주친다. 그러나 그곳에 가서 “노란 밀감나무”를 지나치다 본 적은 없었다. 노란 밀감나무는 감나무가 아니다. 감귤나무, 즉 귤나무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시에서 노란 밀감나무는 실은 감나무가 아니다. 감귤나무, 즉 귤나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아름다운 산책의 코스는 내가 좋아하는, 내가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걷고 싶은 길”이고 “당신과 함께 앉고 싶은 잔디”가 보이기에 조병화의 시가 생각나고, 티소의 그림이 떠오르는 그런 산책 코스의 명소임엔 틀림없다.
나무 박사 강판권 교수의 귤나무 설명은 이렇다. 다음이 그것이다. 운향과(芸香科)의 늘 푸른 작은 키 귤(橘)은 제주도에 살지 않아도 흔히 먹을 수 있는 겨울철 한국인의 주요 과일이다. (중략) 귤은 제주도와 일본 등 온대지역에서라면 대부분 재배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중국 강남은 귤 재배를 일찍부터 시작했다. (중략) 우리나라에는 귤이 삼국시대부터 들어왔다. (중략) 귤은 우리나라에서 일찍부터 재배했지만 제주도를 제외한 곳에서는 자라나기 어렵기에 식용 과일은 아니었다. (강판권, 《역사와 문화로 읽는―나무사전》, 594~598쪽 참조)
조병화 시에 등장하는 “노란 밀감나무 아래 빈 벤치들”은 한국에서 도무지 만날 수 없는 산책의 이색적인 풍경으로 올라온다. 어렴풋이 해외로 장소가 추측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 속의 산책 배경은 우리에게 대만으로 잘 알려진 힐링 온천 여행지 양명산 국립공원인 것 같다. 바로 그곳이라고, 파악된다. 그곳에서 시가 처음 구상이 되었고 만들어졌으리라. 물론, 시의 완성은 국내에서. 그러니까 조병화 시인이 대만에서 귀국한 이후로 파악되고 여겨진다.
여하간 아름답고 좋은 산책의 코스를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와 더불어 그 시간과 장소를 아직도 기억하는 당신이 살아있다면 눈물 나도록 고마운 일상이 내겐 된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내가 진정 사랑하는 당신이 산책 중에 되돌아서 나를 보고 그윽한 사랑의 눈길로 응시한다. 화가 제임스 티소가 그린 <10월>이란 작품은 그런 그림이다.
우리는 살면서 “만나다 헤어질 그 사람들이 또 그리워”지는 때가 언제이고 당신이 누구인지를 두고 갈팡질팡 방황하고 고민을 또 거듭한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세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타인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 그러므로 ‘너’는 어느새 당신이 된 줄, 전혀 모른다. 다만, 함께 길을 걷고 싶고, 함께 잔디에 앉고 싶은 누군가를 지금 허락할 수 있다면 ‘그’는 내게로 와서 ‘당신’으로 반짝이며 꽃처럼 빛날 뿐이다.
◆ 참고문헌
김옥림, 《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미래북, 2019. 54~55쪽 참조. 황현산, 《우물에서 하늘 보기》, 삼인, 2015. 91, 132~151쪽 참조. 이주헌, 《그리다, 너를-화가가 사랑한 모델》, 아트북스, 2015. 101~118쪽 참조. 강판권, 《역사와 문화로 읽는―나무사전》, 글항아리, 2010. 594~598쪽 참조. ylmfa9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