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직면한 변곡점 또는 중흥기
백악관에서 웨이퍼를 흔들면서 투자를 촉구하던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 첫 행사로 평택 삼성 캠퍼스를 찾아 웨이퍼에 서명함으로써 삼성과 반도체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반도체가 단순한 첨단 상품이 아니라 미국조차 체면 불구, 러브콜을 할 정도의 핵심체라면 다른 나라는 두말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반도체 강의를 했으며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은 4백 50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아직 사면을 받지 못해 ‘취업제한’에 걸려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이처럼 대규모 투자계획과 함께 방한 한 겔싱어 미국 인텔 CEO와도 만났다. 곧이어 그는 유럽 출장길에 오르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반도체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지금, 대만의 TSMC와 세계 반도체 산업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이 행동반경을 넓힘과 동시에 속도를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대만 반도체 정책은 ‘진흥’이라는 목표는 같아도 내용은 전혀 다르다. 미국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서 반도체 주도권을 가지려는 것이 목표이지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위인 대만은 지정학 리스크의 최후 방어벽으로서의 반도체 산업을 추구한다. 미국 투자에 소극적인 대만은 국내 20곳에 신규 또는 공장 증설을 서둘고 있다. 총 1백 60조 원으로 추산되는 반도체 설비 증설의 주체인 TSMC는 대만에 반도체 설비를 집중해 놓으면 중국의 ‘통일 작전’이 작동했을 때 세계(반도체 소비국)가 방관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을 마친 것이다.
한국 대만 경쟁, 미는 주도권 잡기
TSMC, 국내 집중 중국 위협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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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부-기업 2인3각 효율성에 기대
‘포스트 실리콘밸리’ 움직임도 주목을
이 두 나라에 비해 비교적 행동반경이 넓은 한국은 차제에 현재 대만에 뒤져있는 부문인 파운드리, 비메모리 시스템 반도체의 역량을 키워 메모리와 함께 명실상부한 지배자 위상 확보가 목표다. 4백 5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계획이 대부분 반도체, 그것도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경쟁력(기슬력) 제고에 집중된 것만 보더라도 삼성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삼성은 문재인 정부 때도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았으나 그때와 지금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부 지원의 강도가 다르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자체를 반도체 강의실로 바꿀 정도로 구체적인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과는 비교가 안 된다.
삼성이 유럽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는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이 반도체 설비업체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생산하는 설비를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리 거창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실행이 어렵다. 지금 삼성과 대만이 2나노(1나노는 10억 분의 1미터)급 기술경쟁도 누가 얼마나 많은 설비를 적기에 도입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또 설계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암(ARM:일본 소프트 뱅크 소유)을 붙잡아 두려는 영국 정부의 노력 또한 눈물겨울 정도다. 80년대 반도체 강국이었던 일본은 일본대로 고급인재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일본 도호쿠 대학은 전통적으로 신소재 금속학 인재 양성대학이다. 70년대 말 신소재인 비결정 금속인 아모포스의 상용화에 성공으로 이름을 높였다. 지금 미국은 도호쿠대학 박사, 석사 과정 인력을 ‘부르는 값’으로 유치하고 있다.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이제야 각급 대학에 반도체 학과 증설에 나선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삼성 등이 대규모 투자로 화답하는 것을 보면 그동안 얼마나 목이 말랐으며 애를 태웠는지를 알 수가 있다.
지금 미국은 미국대로 포스트 실리콘 밸리 찾기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아직도 실리콘 밸리가 첨단 벤처 창업의 중심지이기는 하지만 땅값, 물가 등 인프라의 급등으로 일종의 포화상태를 맞았다. 이에 대신할 곳으로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텍사스의 오스틴과 댈러스가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한국과 대만은 물론 미국은 미국대로 자기 위상을 지키면서 지분 높이기에 나섰고 영국과 일본은 나름대로 ‘남은 상품’의 경쟁력 유지에 집중하고 있다. 바야흐로 반도체는 상품의 성격까지 변할 정도의 격렬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변곡점, 또는 중흥기를 맞은 것이다. 윤석열 정부와 한국 반도체 기업(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이인삼각’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