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취미, 사실로 드러나나?
“회장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대통령)연설문 고치는 일이다. 자기가 고쳐놓고 연설문에 문제가 생기면 애먼 사람들을 불러다 혼내기도 한다.”
이는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로 지목되고 있는 최순실 씨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전 국가대표 펜싱선수 고영태 씨가 <JTBC> 취재진에게 한 말이다.
고 씨의 이러한 주장은 아무런 공직도 없는 일반인인 최 씨가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한다는 얘기다.
물론 고 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 실소를 금치 못했다”면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그게 밖으로 얘기가 나오는지 개탄스럽다”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인했다.
청와대 관련 문건…최순실에게 사전유출?
그러나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2016년 현재, 대한민국 청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최순실 씨가 운영한 사무실 컴퓨터에서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관련 문건이 대거 발견된 것이다.
지난 24일 이를 단독으로 보도한 <JTBC>에 따르면, JTBC가 입수한 최순실 씨가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컴퓨터에 청와대와 관련된 200여개 파일 중 44개의 대통령 연설문이나 공식 발언문 등의 파일이 존재했다고 한다.
최 씨의 컴퓨터에 저장된 대통령 연설 관련 파일들은 박 대통령 공식 발언에 앞서 최 씨가 먼저 받아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대통령 연설문 등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최 씨에게 사전 유출됐다는 것.
예를 들어 지난 2014년 3월 박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통일대박을 언급하며 남북 간 구체적 실행방안을 담은 ‘드레스덴 연설문’의 경우, 박 대통령의 연설보다 하루 앞서 최 씨가 자신의 컴퓨터에서 열람한 것으로 확인했다.
드레스덴 연설 전 어느 누군가가 최 씨에게 연설문을 전달했고, 최 씨가 이를 자신의 컴퓨터를 통해 열람했다는 것이다.
崔, 청와대 인사에도 개입했나?
또한 청와대 비서진 교체 하루 전날이었던 지난 2013년 8월 4일 오후 6시 27분 최 씨는 비서진 교체 관련 자료를 열람했고, 다음날 허태열 당시 비서실장이 교체되는 등 청와대 비서진이 대거 교체됐다.
이는 청와대 누군가가 최 씨에게 보내준 비서진 교체 관련 자료를 하루 앞서 받아본 것으로 최 씨가 청와대 인사개편을 사전에 알았다는 것.
이 외에도 최 씨는 대통령 당선 뒤 첫 신년사(2012년 12월 31일)와 2013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사, 박근혜 후보 당시 유세문, 대통령 당선 소감문,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국무회의 자료 등 여러 청와대 문건 등을 미리 받아본 것으로 알려졌다.
JTBC는 최 씨가 적게는 4분에서 길어야 1시간 반 이내에 거의 실시간으로 연설문 등을 전달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 씨의 컴퓨터 아이디는 ‘유연’으로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의 개명 전 이름이다. 최 씨가 이들 문건을 직접 수정했는지, 수정해서 청와대에 전달했는지 여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건 박 대통령과 관련된 청와대 문건들이 최 씨에게 사전에 전달됐다는 점이다.
이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누구든 무단으로 대통령 기록물을 유출하거나 반출해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길 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진다.
문건 유출자는 누구? 문고리 3인방 정호성?
그렇다면 누가 최 씨에게 대통령 관련 문건들을 사전에 유출했을까.
JTBC는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 최측근 참모의 아이디였다”고 밝혔다.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 그리고 최 씨와 안면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세 사람이 있다.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라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이다.
이들은 문고리 3인방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며 최 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 씨가 박 대통령을 보좌하던 시절 이들을 발탁했다. 때문에 문고리 3인방은 최 씨하고 안면이 있다.
문고리 3인방 중에서도 과연 누가 최 씨에게 문건을 사전 유출했을까.
청와대에서는 8·15경축사 등 대통령의 주요 발언을 앞두고 수석실별로 자료를 올리면, 관련 수석비서관 등이 회의를 거쳐 연설기록비서관이 초안을 만든다.
이렇게 작성된 초안은 정호성 제1부속실 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대통령이 최종 수정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중앙일보 인터넷판은 문건을 최 씨에게 사전에 유출한 사람이 정호성 비서관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가 몇 시간 뒤 기사를 삭제했다.
이에 대해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모든 경위에 대해 다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정 대변인은 “다양한 경로로 조사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파악하고 있는 중이니까 지켜봐 달라. 파악이 되는 대로 알려드릴 게 있으면 알려 드리겠다”고 밝혔다.
새누리 “대통령이 직접 소명해야”
이와 같이 청와대가 박 대통령 관련 문건을 최 씨에게 사전에 유출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 새누리당에서도 박 대통령이 이에 대해 직접 해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직접 소명하고 입장을 밝혀야 한다”면서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정 원내대표는 “청와대 사람들 누구도 사실 확인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보도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며 “대한민국 국민이 더 이상 참담한 수렁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런 절박한 심정”이라며 문건 사전유출에 대해 청와대가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한데 대해 절망감을 드러냈다.
박명재 사무총장은 “청와대가 지금 사실을 파악 중이라고 했지만 촌각을 다투는 문제”라며 “신속히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서 국민들에게 모든 사실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며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권성동 의원은 “이 사건은 덮을 수도 없고, 덮어서도 안 된다”며 “국민의 분노와 경악이 도를 넘고 있는데, 우리 당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청와대를 비호하거나 옹호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하태경 의원은 “특정 민간인의 부정 비리라고 보기엔 너무 엄청난 사건”이라며 “최 씨가 관여한 것이 연설문 뿐 아니라 청와대 인사 문제로 사전 검토했고 이권 개입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좌절감을 나타냈다.
이어 “최순실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개헌 논의를 잠정 유보하겠다는 각오로 문제 해결에 당력을 집중해야 한다”며 “대통령도 개헌이란 역사적 결단이 빛을 바래지 않도록 대통령이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