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재벌가 자제의 숨겨진 그늘
금수저 물고 태어났지만 ‘행운’ 오래가지 않아…그룹 측 ‘난색’ 입장표명 자제
5000만원 때문에 징역살이 신세 지는 재벌가 3·4세…자금난 시달리는 황태자
부모 반대로 사랑 잃고, 가문에서 쫓겨나 극심한 스트레스에 스스로 목숨 끊어
3살의 어린 나이에 중국 대륙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했던 한 남자아이는 61세의 나이가 됐을 때 식물원의 정원사로 생을 마감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이 정원사는 1908년 서태후에 의해 청나라 12대 황제로 즉위했던 ‘푸이’다. 그는 신해혁명과 중국 사회주의혁명 등 역사의 회오리 속에 휘말려 대륙의 황제에서 전범자가 됐고 끝내 식물원의 정원사로 삶을 마무리했다. 그의 영화와도 같은 삶은 실제 ‘마지막 황제’라는 타이틀로 제작돼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우리는 이러한 비운의 황태자 ‘푸이’를 오늘날 재벌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1%의 부와 명예를 축적한 재벌가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승계 경쟁에서 밀리거나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 ‘비운의 황태자’가 된 이들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간 그들의 삶을 <팩트인뉴스>에서 추적했다.
최근 한 재벌가 4세는 돈 5000만원 때문에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해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두산가 4세 박중원(45)씨로 주가조작 혐의에 최근 사기 혐의까지 더해져 두산가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지난 8월12일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차남인 박씨가 사기혐의로 고소됐다는 소식이 세간에 알려졌다. 박씨를 고소한 이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홍모(29) 씨로, 그는 박씨가 두산가 사람이라는 점을 믿고 돈을 빌려줬는데 ‘사기’를 당했다며 박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서울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박씨는 한남동에 있는 자기 소유의 빌라 유치권만 해결되면 돈을 갚겠다고 말하며 홍씨로부터 5000만원을 빌렸다. 그러나 두 달의 약속 기간이 지났음에도 박씨가 돈을 갚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자 홍씨는 박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조사 결과 한남동에 있는 빌라 역시 박씨 소유의 빌라가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재벌가 5000만원’ 파문의 주인공이 재벌 순위 15위에 드는 두산가의 자제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은 당황스러운 반응과 함께 그 배경에 집중했다.
자금난 시달리는 황태자
박씨 역시 여느 재벌가의 자제들처럼 남부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박 전 회장의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날 때부터 ‘로또’에 당첨된 행운아였으나, 박 전 회장이 두산가의 ‘형제경영’ 전통에 반발하면서부터 황태자였던 그의 운명에도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박 전 회장은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6남 1녀 중 차남으로 지난 1996년 형제경영 전통에 의해 그룹 회장직에 부임했다. 문제는 지난 2005년 박 전 회장이 동생인 박용성 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에게 경영권 이양을 거부하며 형제경영의 전통을 깨면서부터 발생했다.
이로 인해 두산가에서 소위 형제의 난이 시작됐고, 치열한 싸움에서 박 전 회장이 패배하면서 당시 두산산업개발 상무에 자리했던 두 아들(박씨, 장남 박경원(49) 씨)과 함께 박 전 회장은 두산가에서 제명됐다.
이후 박 전 회장은 3년이 지난 2008년 성지건설을 인수해 경영일선에 복귀하고 재기를 노렸지만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극심한 경영난에 처했다.
결국, 박 전 회장은 지난 2009년 “회사 부채가 너무 많아 경영이 어렵다”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재계에 안타까움을 남겼다.
장남인 박경원 성지건설 부회장은 박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사업을 진행했으나 12억원 규모의 어음을 막지 못해 1차 부도를 냈고, 급기야 2010년 최대주주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버지와 형이 고충을 겪고 있을 당시 박씨는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지난 2007년 코스닥 상장사인 뉴월코프를 허위 인수한 뒤 자기자본을 들인 것처럼 공시해 주가를 폭등시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증권거래법 위반)로 구속 기소된 박씨는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박씨가 재벌가의 일원임을 이용해 주가를 조작한 ‘재벌테마 작전주’에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이후 박씨의 삶이 녹록치만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5000만원 파문이 불거지면서 박씨의 재산상태에도 이목이 집중됐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박씨는 형 경원씨와 함께 400억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의 대부분이 경매로 넘어가거나 압류에 빠지면서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신세로 오명떨친 황태자
재벌가에서 태어났으나 비운의 길을 걷는 황태자는 박씨 혼자가 아니다. 두산그룹 외에도 재계의 내로라하는 LG그룹과 삼성그룹에서도 비슷한 운명을 걷는 황태자들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징역 3년형에 처해있는 구본현(44) 전 엑싸이엔씨 대표가 그 중의 한 명이다. 구 전 대표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조카이자 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의 아들로 황태자의 신분에 있으며 위세를 떨쳐왔으나, 지난 2010년 아버지인 구 회장이 횡령 등의 죄를 물어 부동산 가압류 신청을 가하면서 부자지간에 금이 갔다.
지난 7월엔 주가를 조작해 부당이익을 챙기고 수백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한 죄가 인정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와 관련해 LG그룹 측은 구 전 대표와의 거리를 두며 그저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가하면 올해 최고의 화두로 꼽히는 ‘삼성가 유산소송’은 또 다른 비운의 황태자를 들추는 계기가 됐다.
고 이병철 창업주 유산을 둘러싼 상속 소송에 새한그룹 측의 일부인사가 가세하며 비운의 황태자 이재관・이재찬 형제가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재관(50) 전 새한그룹 부회장은 아버지 이창희(이병철 창업주의 차남) 전 새한그룹 회장이 지난 1991년 혈액암으로 사망하면서 20대 어린 나이에 그룹의 총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계열사 중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매각 혹은 부도처리 돼 경영권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고, 지난 2002년에는 분식회계를 통해 불법대출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뒤 김홍업 로비 사건에 휘말리며 오랜 기간 법정 신세를 져야 했다.
2008년 광복절 특사로 특별 사면된 이후 이 전 부회장은 사실상 두문분출하며 은둔형 황태자로 자리잡았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이 전 부회장이 ‘심각한 자금난에 처해있다’, ‘삼성가에서 완전히 잊혀졌다’는 등의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삼성가 유산 소송에서 이 전 부회장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며 재기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특히 변호사를 통해 “삼성 측 일가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며 항간의 소문을 털어냈다.
스스로 세상을 등져
이 전 부회장의 동생인 이재찬 씨는 지난 2010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당시 이씨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은 더했다.
사실 그는 한때 새한미디어의 수장을 맡으며 촉망받는 재벌가의 황태자로 자리매김했었다. 그의 나이 27세에 아버지가 타계하면서 형과 함께 450억원을 웃도는 재산을 상속받기도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인해 새한그룹이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이씨의 행방도 묘연했다.
그러다 다시 전해진 그의 소식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내용이었다. 용산경찰서는 지난 2010년 8월 이씨가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은 극심한 생활고에 이씨가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씨는 사망하기 전 최근 5년 동안 홀로 생활하며 한 달 150만원의 월세 신세를 지고 있었으며, 생활고로 인해 근처 가게에 수십만원 상당의 외상을 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46세에 홀로 쓸쓸하게 눈을 감은 비운의 황태자의 죽음에 세간은 애도를 보냈다.
삼성가는 이에 앞서 지난 2005년에도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세상에 남부러울 것 없을 것만 같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막내딸 이윤형 씨가 26세의 꽃다운 나이로 미국에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알려지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삼성 측은 이씨의 사인이 교통사고라고 밝혔지만, 뉴욕 경찰의 부검 결과 이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의 여성부호 3위에 등재되며 약 2000억원대의 재산을 보유한 이씨의 자살동기를 두고 세간의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씨가 평범한 집안 출신의 남자친구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이 회장과 홍 관장이 이씨의 남자친구를 탐탁지 않게 여기자 이를 두고 고민해오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아니냐는 소문이 피어올랐다.
당시 이 회장과 홍 관장은 숨진 자식의 장례에 부모가 참석하지 않는 관례에 따라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직계가족들만 참석한 채 이씨의 장례는 조용하게 치러졌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재벌 총수라고 달랐을까. 이 회장이 특별히 애지중지했던 막내딸이었기에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비명횡사…가슴에 묻다
삼성가 외에도 갑작스러운 사고로 소중한 자식을 잃은 재계 총수가 있다. LG와 롯데 그리고 대우그룹에서도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황태자들이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1994년 외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구 회장의 아들 원모 씨의 갑작스러운 사망을 놓고 재계에서 갖가지 추측이 제기됐으나 LG 측의 함구로 ‘급사’라는 것만 확인이 됐다. 당시 구 회장 내외는 1남 1녀를 두고 있어 그 슬픔은 더욱 크게 느껴졌고, 재계에서도 LG가의 황태자로 주목받던 원모 씨의 사망에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햇다.
그가 만약 목숨을 잃지 않았더라면 삼성가의 이재용 사장과 현대가의 정의선 사장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차세대 ‘총수’였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뒤로 하고 LG그룹의 대를 위해 50대의 나이에 아이를 가졌으나 막내딸을 얻게 됐다. 이에 2004년 그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광모씨를 양자로 입적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구 회장 내외는 아들의 위패가 안치된 서울 삼청동 칠보사에 자주 발걸음하며 마음을 위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구 회장과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김 전 회장은 장남 선재 씨를 미국 유학 도중에 불의의 사고로 잃었다.
1990년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선재 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김 전 회장 내외는 아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2003년 그의 이름을 딴 ‘아트선재센터’를 서울 종로에 세웠다. 그의 어머니 정희자 씨의 측근에 따르면 아들을 기리는 전신 유화가 몇 해 전까지 센터 로비에 걸려있었으나 현재는 별도로 보관되고 있다.
김 전 회장 내외는 선재 씨 외에도 아들 2명이 있었기 때문에 승계를 위한 걱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사무쳐 그를 닮은 유명 연예인 L씨를 양아들로 삼았다고 전해져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재계의 비운은 롯데그룹에도 이어졌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 신준호 롯데우유 회장의 장남 신동학 씨가 37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2005년 신씨는 태국의 한 아파트 6층 베란다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했다. 현지 경찰은 실족사로 사건의 경위를 밝혔고, 신씨가 사업과 여행을 겸해 태국 길에 올랐다가 이같은 변을 당했다고 전했다.
그는 롯데가에서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았으나 불미스러운 일들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소문난 황태자였다.
특히 1994년 운전 중 프라이드 차량이 ‘건방지게’ 끼어든다며 운전자를 집단 폭행한 데 이어 1996년 동거녀와 함께 대마초와 코카인을 흡입한 혐의로 철장신세를 지는 등 롯데가의 ‘악동’으로 불리는 오명을 얻었다. 이에 가문에서도 싸늘한 시선을 받은 그였지만 갑작스러운 추락사로 인해 롯데가의 비운의 황태자로 남게 됐다.
이렇듯 재벌가문도 시간이 점차 흐름에 따라 3세, 4세로 가족 수가 늘어나면서 사건 사고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화려하게만 보이던 재벌가 자제들의 어두운 뒷모습도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1%의 부와 명예를 소유한 재벌가 자제들이 송사에 휘말리거나 자금난에 시달리고 심지어 젊은 나이에 한줌의 재로 변하는 '비극'을 지켜보면서 이들 비운의 황태자에 대한 '씁쓸함'과 '안타까운' 감정이 교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