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항공업계는 악몽 같은 한해를 보냈다. 한일무역분쟁의 여파를 직격으로 맞았고, 양대 국적항공사 중 한 곳인 아시아나항공의 주인이 바뀌었다. 차세대 주력 항공기로 꼽혔던 보잉 737 맥스 기종이 잇단 추락사고로 생산 중단되면서 특히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업계 맏형인 대한항공도 예외는 아니다. 대한항공은 6년만에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항공업계의 위기가 괜한 엄살이 아님을 보여줬다.

이에 <팩트인뉴스>는 올 한해 항공업계를 뒤흔들었던 결정적 사건들을 정리해봤다.


일본 여행 보이콧-홍콩 시위 사태성수기는 없었다

차세대 주력 항공기의 추락LCC 항공사들 어쩌나

여름·추석 성수기도 무색한 항공업계 불황
항공업계 올해 최대 위기는 엉뚱한 형태로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1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취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안보를 위한 자위적 조치를 들었지만, 우리나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배상 판결에 따른 경제제재 조치로 풀이됐다. 이후에 고조된 ‘반일 감정’은 일본 여행을 포함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전개됐다. 

일본 불매운동은 항공업계의 수요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국토교통부가 항공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 11월 한 달간 국내 항공사들의 일본 노선 여객수는 총 89만185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58만3025명에 비해 43.7% 감소했다. 

한일 무역 갈등이 본격화된 지난 8월과 비교해도 감소폭은 더욱 커졌다. 8월 한달간 일본 노선 여객수는 132만954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72만1564명에 비해 22.8% 줄었다. 비수기인 11월 들어서는 감소폭이 더 두드러진 셈이다. 

항공업계는 일본 노선 여객이 감소하자 운항편수를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8월부터 인천발 후쿠오카‧오사카‧오키나와 등 일본 노선을 줄이는 대신 동남아 및 중국 노선을 확대했다. 그 결과 11월 기준 일본 노선 운항편수는 5759편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547편) 대비 39.7% 감소했다. 

최근 몇 년간 일본이 대표적인 해외 여행지로 인식됐던 만큼 일본 여객 감소는 항공업계 실적에 큰 타격을 줬다. 실제로 지난달 발표된 항공업계의 3분기 영업성적표는 참담하다. 흑자를 기록한 곳은 대한항공이 유일한 데다 이 영업이익도 지난해 같은 기간대비 70% 감소했다. 

일본 노선 비중이 높았던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LCC업계 1위 제주항공은 3분기 연결기준 매출 3688억원, 영업손실 174억원, 당기순손실 30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3688억 원으로 전년보다 5.3% 늘었지만 수익성이 악화돼 ‘적자전환’했다. 제주항공은 일본 불매 운동이 있기 전까지인 지난 1분기까지 무려 19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이었다. 

항공업계 실적 부진에는 일본 노선 감축뿐만 아니라 홍콩 민주화 시위에 따른 수요 감소도 영향을 미쳤다. 

홍콩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외교부는 홍콩을 8월 말 ‘여행 유의’에서 지난달 ‘여행 자제’로 격상했다. 대표적 단거리 노선인 일본을 대체할 수 있는 지역으로 홍콩이 꼽혀왔는데, 이 역시 막히게 된 것이다. 국토부 항공통계에 따르면 올해 6~10월 인천~홍콩 노선 여객은 123만909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42만2715명) 대비 12.91% 줄었다.

이런 가운데 일부 항공사들이 동계시즌에 맞춰 일본 노선 운항을 재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운항을 중단했던 인천발 가고시마·고마쓰 등 2개 노선의 운항을 최근 재개했다. 에어부산은 지난 8월 감편한 후쿠오카 노선을 오는 29일부터 복원한다. 이스타항공도 지난 1일 삿포로 노선을 시작으로 오키나와, 미야자키 노선 등 인천발 3개 노선의 운항을 재개했다.

일본 노선 운항 재개는 항공업계가 최악의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수익성 보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차세대 주력 기종의 몰락
미국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은 지난 16일 보잉 737 맥스 항공기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한때 내년 737 맥스의 운항이 재개될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지만, 해당 기종의 안전성을 심사 중인 미연방항공청(FAA)이 면허 갱신이 내년으로 미뤄질 수 있다고 밝히자 결국 생산 중단이 결정됐다. 

보잉 737 맥스는 최근 잇단 추락사고로 총 346명을 사망케 했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의 737 맥스 기종 여객기가 추락한 데 이어 지난 3월 에티오피아항공 여객기가 추락하면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40여개국에서 737맥스 기종 운항이 금지됐다.

보잉 737 맥스8 기종은 차세대 주력기로 꼽히며 우리나라 항공사에도 대거 도입이 예정돼 있었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국내 항공사 4곳이 올 4월부터 2027년까지 총 114대의 보잉737 맥스 항공기를 도입할 예정이었다. 항공사별로는 제주항공이 56대로 가장 많고, 대한항공 30대, 이스타항공 18대, 티웨이항공 10대 순이었다. 

국내 항공사들이 보잉737 맥스에 주목했던 것은 이 기종이 획기적인 비용절감기능을 갖췄기 때문이다. 737 맥스는 연비가 좋고, 좌석수가 많아 경쟁 기종에 비해 7% 정도의 운용비용 감소 효과가 있다.

그만큼 중장거리 노선을 주로 운항하는 LCC 입장에서는 최적의 기종이라는 평이다. 국내 LCC 중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티웨이 항공이 향후 737 맥스 기종을 주력으로 노선을 운영할 계획을 세웠지만, 이번 생산 중단 결정으로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됐다. 

특히 해당 기종 2대를 선제적으로 들여온 이스트항공은 국내 항공사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현재 해당 항공기는 10개월 넘게 주기장에 방치되고 있다. 당초 이 기종을 싱가포르 등 중장거리 노선 확대에 이용할 계획이었으나 계획이 차질이 생긴 것이다.

 

▲ 보잉 737 맥스8 항공기


추가 도입 예정이었던 4대는 보류 상태다. 이스타항공이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최근 제주항공에 인수가 확정된 배경에는 737 맥스 기종의 운항 중단이 중요한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른 항공사들도 도입을 보류하고 대체 기종의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보잉사가 생산 중단을 결정한 만큼 운행재개 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FAA의 안전승인이 떨어지더라도 국토부의 운행재개 승인이 내려지기 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알 수 없다. 내년 운항계획을 세워야 하는 국내 항공사 입장에서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주인 바뀐 아시아나항공‧이스타항공…지각변동 가속
대한항공이 쏘아올린 ‘희망퇴직’…감원 칼바람 분다

주인 바뀐 아시아나항공‧이스타항공…항공업계 재편 신호탄?
올해 항공업계는 크게 재편됐다. 업계 2위인 아시아나항공이 금호그룹을 떠나 HDC현대산업개발 품에 안겼기 때문이다. 31년 만에 아시아나항공의 주인이 바꼈다. 

금호산업은 지난달 12일 아시아나항공 우선협상대상자로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이번 매각은 아시아나항공과 이 회사가 보유한 자회사까지 모두 포함한 형태다. 이에 따라 자회사인 에어서울, 에어부산도 인수 대상에 포함됐다. 국적 항공사 3곳의 주인이 한 번에 바뀌게 되는 셈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4월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정상화를 위해서 자구계획안을 채권단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결국 매각이 결정됐다. 당초 유력한 인수 후보로 SK그룹, 한화그룹, CJ그룹 등 국내 유력 대기업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인수비용이 최소 1조원에서 2조원에 달하고,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지난 6월 말 연결기준 9조5899억원에 이르는 등 재무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1년 내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이 1조2000억원 수준이라 자금 부담이 상당해 예상보다 반응이 저조했다.

 


결국 지난 9월 예비입찰로 후보자는 애경그룹과 HDC현대산업개발로 압축됐다. 애경그룹은 LCC 1위인 제주항공을 보유하고 있어 일찌감치 인수후보로 거론됐고, HDC현대산업개발은 아파트 건설과 면세점 사업을 주력 사업으로 하고 있어서 다소 의외라는 평이 있었지만 매각 본입찰에서 매입가격으로 2조5천억원 가까이 써내 인수를 확정했다. 1조원 후반대를 써낸 애경을 자본력으로 눌렀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협상은 다소 진통을 겪고 있다. 당초 12일까지 매각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이달 말로 협상시한을 연장했다. HDC현대산업개발과 금호그룹은 구주가격과 손해배상한도를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펼치고 있지만, 양측이 연내 매각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만큼 올해 안에 매각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아시아나항공은 새 주인을 맞아 로고도 교체하고 새로운 브랜드로 거듭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아시아나항공 인수경쟁에서 밀려난 애경그룹이 이스타항공의 경영권을 인수한다고 밝혀 이목이 집중됐다. 애경그룹이 보유한 제주항공은 지난 18일 이스타항공 최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와 주식매매계약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제주항공이 인수하는 이스타항공 지분은 51.17%(497만1천주)로 695억원 수준이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 추진에 대해 “항공사 간 결합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양사의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점유율 확대 및 시장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번 매각이 공식 발표되기 전부터 업계에서는 이스타항공 매각설이 끊임없이 불거졌다. 이스타항공은 보잉 737 맥스 기종의 운항 중단, 일본 여행 보이콧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지난 9월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매각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스타항공 측이 지분 매각을 위해 국내 대기업, 사모펀드 등과 접촉했다는 이야기도 업계 안팎으로 들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먼저 매각을 제안했고, 이스타항공은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큰 결단의 차원에서 제안을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LCC 1위인 제주항공이 5위인 이스타항공을 품에 안으면서 업계 지각변동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실적부진에 출혈경쟁까지 이어지면서 항공시장에 구조조정이 도래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교수는 지난달 ‘일본 수출규제 대응 및 항공운송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정책 토론회에서 “과거 미국처럼 현재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많은 항공사가 있다”며 “미국은 78년 당시 규제 완화가 되며 많은 항공사가 난립했고, 이후 파산과 부도, 인수합병 과정을 통해 정리됐다”고 지적했다. 국내 항공업계에서도 향후 항공사 간 인수합병이 추가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허리띠 졸라매는 항공업계
항공업계에 지각변동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업계 1위인 대한항공이 6년 만에 희망퇴직을 실시해 업계 재편 과정에서 감원 칼바람이 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16일 부터 23일까지 만 50세 이상, 15년 이상 근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대한항공이 희망퇴직을 실시한 것은 지난 2013년 약 110여명 규모 단행한 이후 6년 만이다. 

이번 희망퇴직은 일반직과 객실승무원 대상이며 운항승무원, 기술 및 연구직, 해외근무직원 등 일부직종은 제외된다. 

대한항공은 이번 희망퇴직에 대해 “정년에 앞서 새로운 인생 설계를 준비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보다 나은 조건으로 퇴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는 항공업황 부진이 이어지면서 인사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단행한 것 아니냐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달 열린 간담회에서 “앞으로 구조조정을 딱히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이익이 창출되지 않으면 버릴 것”이라고 말해 구조조정 가능성을 시사 한 바 있다.

 


현재 매각을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도 지난 5월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또 본사 직원 2400명을 대상으로 최소 15일에서 최대 2년의 무급휴직을 필수적으로 신청하도록 하고 있다. 

매각이 완료되는 내년에는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일단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묻는 질문에 “현재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향후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다. 실제로 매각 발표 이후 일반직 직군전환을 통한 연봉제 확대, 국내지점 폐쇄 및 아웃소싱 등을 통한 비용절감에 나섰다. 

대형항공사들이 감원에 나서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가운데 LCC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LCC는 일본 불매 운동 여파를 직격으로 맞은 상황에서, 최근 운항을 시작한 플라이강원을 비롯해 내년에 신규사업자인 에어로케이·에어프레미아가 운항을 시작하면 국내 LCC 업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LCC는 실적이 부진하다고 무턱대고 감원에 나설 수는 없는 상황이다. LCC는 전문 인력 수급에서도 경쟁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LCC 관계자는 “항공업계에서는 다른 항공사의 인력 빼가기가 공공연하게 이뤄진다”면서 “우리 항공사로 이직하면 인센티브를 얼마 주겠다는 식의 연락이 수시로 걸려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인력 유출 자체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전문 인력의 몸값이 상승해 고정 비용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LCC간 경쟁이 심화되더라도 당장에 구조조정에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력 감축은 염두에 둘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뉴시스, 대한항공,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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