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업 정지에 중국 업체 공습까지…철강업계 ‘내우외환’ 극심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자동차, 조선 등 철강수요 산업의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철강업계가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의 잇따른 행보에 고역을 치르고 있다.

충청남도와 전라남도, 경상북도 등 지자체는 이달 초 도내 제철소에 10일의 조업 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들 제철소가 고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무단 배출했다는 이유에서다.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제다. 철강업계는 이번 조업정리 처분으로 인해 수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자체의 엇박자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부산시는 세계 1위 중국 스테인리스강 업체의 국내 진출을 추진하고 있어서 논란이 됐다. 철강업계 뿐만 아니라 포항시와 창원시 등 인근 지자체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지자체가 위기 산업을 지원하기는커녕 쑥대밭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세계 1위 스테인리스강 업체 부산 진출중국산 철강 우회수출처 전락

국내 기업엔 조업 정지, 중국 기업엔 투자 협약국익내팽개친 지자체

 

부산시가 세계 1위 스테인리스강 원자재 제조사인 중국 청산강철로 부터 투자의향서를 받고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공급이 포화상태인 국내 냉연제품 시장에 타격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지만 부산시는 어렵게 잡은 투자 기회인 만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자체가 중국 기업 유치…기간산업 흔드나

부산시와 철강업계에 따르면 청산강철은 지난 3월 연 60만t 생산이 가능한 냉연 공장을 설립하겠다는 내용의 투자의향서를 부산시에 제출했다.

청산강철은 국내 기업인 길산그룹과 각각 지분 50%씩 1억2000만 달러를 투자해 합작법인 ‘GTS’를 설립하고 연간 60만t 규모의 냉연 공장을 올해 하반기 부산 미음산단에 짓는다는 계획이다. 청산강철은 전 세계 스테인리스 생산량 약 3,000만t 중 1,000만t을 차지하는 세계 1위 규모의 제조사다.

이번 투자로 약 500명의 직접 고용이 기대된다. 하지만 고용창출 규모보다 총 고용 5000명에 달하는 국내 동종업계 손실이 더욱 클 것이라는 게 철강업계 주장이다.

국내 스테인리스 냉연제품 시장 수요는 지난해 기준으로 103만t에 불과하다. 전체 스테인리스 공장의 생산 능력은 189만t으로 이미 공급 과잉 수준인데 다가 값싼 수입품도 이미 35%를 차지했다. 공장 가동률은 60%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산 소재를 들여와 60만t을 추가 생산하겠다니 철강업계 입장에서는 황당한 노릇이다.

지역 경제 살리려고 나라 경제 죽이는 꼴

상황이 이렇다보니 철강업계뿐만 아니라 인근 지자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철강협회는 지난달 30일 성명서를 통해 “청산강철의 한국 내 생산 거점 마련이 현실화할 경우 국내 스테인리스냉연 업계는 고사되고 실업률 상승 등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제철도시인 포항시 또한 부산시에 사업 전면 백지화를 촉구했다. 이강덕 포항시장과 김재동 포항상공회의소 회장, 한국노총 포항지역본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포항지회 대표 등은 지난 10일 포항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도 중국 등 저가 수입산 냉연강판이 국내 수요의 40%나 잠식한 상황에서 청산강철이 국내 진출 시 저가열연 사용과 부산시의 세제혜택을 무기로 냉연제품을 대량 판매할 경우 전체 국내 수요 잠식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철강업계는 무역제재 가능성도 제기했다. 중국·인도네시아산 소재를 가공한 냉연제품이 한국산으로 둔갑해 수출되면 유럽연합과 미국 등 한국 수출쿼터를 소모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우회수출처로 찍혀 무역제재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산강철은 인도네시아에서 반덤핑 제소가 걸려 있어 현지에 세운 법인에서 소재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무역분쟁으로 막힌 수출판로를 열기 위해 우회투자처로 우리나라를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부산시와 길산그룹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길산그룹 관계자는 “국내 냉연 제조사의 고가격 정책으로 중소기업 경쟁력이 약화됐으므로 이번 투자로 스테인리스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계기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이번 투자유치에 공을 많이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근래 들어 대부분의 제조공장이 마산‧창원 등 인근 지역으로 빠져나가며 발전 동력을 잃고 있어 모처럼 맞은 호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부산시가 국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간과한 채 지역 경제만 돌보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위기 산업 지원은 고사하고 규제 나선 지자체

지자체가 초래한 철강업계 위기는 이 뿐만이 아니다.
 

 

국내 철강업계의 맏형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최근 지자체로부터 고로 조업 정지 10일 처분을 받았다. 충남은 지난 7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조업정지 처분을 확정하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집행정지와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경북과 전남도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 조업 정지를 사전 통지하고 의견서 제출과 청문 절차를 진행 중이다.

지자체들은 제철소들이 고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안전밸브(블리더)를 열어 오염물질을 저감 조치 없이 배출한 것을 문제 삼았다. 철강업계는 이러한 규제가 철강업을 이해 못한 지자체의 탁상행정이라며 황당해 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고로 정비를 위해 블리더를 개방하는 건 업의 특성상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며 “이를 열지 말라거나 열었기 때문에 고로 가동 중단하라는 건 철강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은 “현재로선 전 세계를 통틀어 블리더 개방없이 고로를 정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업계는 24시간 상시 가동해야 하는 연속 공정인 고로를 10일 중단하면 수천억원 대 매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 봤다. 국내 고로 개수가 총 12개임을 감안했을 때 피해액은 수조원에 이르게 된다.

철강업계는 최근 잇따른 악재가 업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지자체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분노하고 있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뉴스1의 보도에서 “철강은 ‘산업의 쌀’로 불릴 만큼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 이 업을 잘 모르는 부처와 지자체가 너무 근시안적인 판단을 하는 것 같다”며 “산업 전체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들을 판단한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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