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수 대법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외 6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내리고 있다. 2020.01.30. (사진=뉴시스)

대법원이 30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의 상고심에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에 대한 상고심 선고에서 심리 미진과 법리오해를 이유로 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김 전 실장등이 문화예술위원회 소속 직원들로 하여금 각종 정부 지원 사업에 배제토록 한 것을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면서도 ‘의무에 없는 일’에 대한 해석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정부 지원금을 신청한 개인 또는 단체의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수행한 각종 사업에서 정부의 지원을 배제하도록 지시한 것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면서도 “직권남용 행위의 상대방이 공무원·공공기관 임직원인 경우 법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지위에 있어 그가 어떤 일을 한 것이 의무에 없는 일인지는 관계법령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행정기관의 의사결정과 집행은 협조를 거쳐 이뤄지는 게 통상”이라며 “이런 관계에서 일방이 상대방의 요청을 청취하고 협조하는 등의 행위를 법령상 의무 없는 일로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 당시 특정 문화·예술계 인사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 및 활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김 전 실장에게 “좌파 배제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식을 공유하면서 위법한 지원배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며 형량을 올려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조 전 장관에 대해서도 “좌파 명단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보조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게 하고 감시하는 역할은 정무수석실 역할이었고 이를 인식하고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018년 2월 이번 사건을 소부2부에 배당했다가 같은해 7월 전원합의체로 넘겨 1년 6개월 간 심리해왔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는 소부에서 의견이 일치되지 않거나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열린다.

이날 선고는 ‘적폐청산’ 과정에서 주 사안으로 적용돼 온 직권남용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놓은 최초의 판단이란 점에서 향후 관련 재판들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던 때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비위감찰을 무마했다는 의혹 역시 직권남용 문제인 만큼 향후 조 전 장관의 재판에 이번 대법원 판결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사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도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돼 있다.

다만 대법원이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에 대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지시받는 자가 ‘의무에 없는 행위’를 한 점을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 점으로 미루어 이번 판결을 ‘직권남용’의 범위를 좁게 해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법원 관계자는 “파기환송의 취지는 직권남용에 관한 법리오해와 그로 인한 심리미진”이라며 “반드시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이라 할 수는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저작권자 © 팩트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