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2020년 12월31일까지 관련법 개정 요구

 

낙태한 여성과 낙태를 시술한 의사 등을 처벌하는 이른바 ‘낙태죄’가 폐지수순을 밟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11일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재는 낙태죄 처벌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헌재가 2012년 낙태죄에 대해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해 합헌 결정을 내렸던 것과 비교해 입장이 180도 뒤집힌 것이다.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단이 내려짐에 따라 공은 국회로 돌아갔다. 헌재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법을 개정할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 하지만 실제로 낙태죄가 폐지되기 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헌재의 위헌 판단에도 불구하고 낙태에 대한 사회 각계의 입장이 워낙 첨예하게 대립 중이라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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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자기결정권 침해”…7년 전과 달라진 헌재 입장
국회, 입법논의 시작…허용 범위‧절차 놓고 진통 예상

헌법재판소는 지난 11일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처벌 조항인 형법 269조 1항 및 270조 1항 관련 헌법소원 심판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2017년 산부인과 의사 A씨가 해당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한 데 따른 것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낙태죄는 1953년 조항이 명시된 이래 66년 만에 폐지수순을 밟게 됐다.

낙태죄 헌법에 불합치…개정돼야

재판관별로 판단요지를 살펴보면 9명 중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위헌으로 판단했고, 2명은 합헌 의견을 냈다. 헌재는 “임신 유지 여부는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과 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며 “낙태죄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앞서 헌재는 2012년 8월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4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헌재는 “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위 조항을 통해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보다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헌재의 이 같은 판단은 7년 만에 뒤집혔다. 헌재는 이번 헌법소원 심판에서 낙태죄가 임신 기간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의사를 처벌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봤다.

7년 만에 뒤집힌 헌재 입장

헌재가 7년 만에 지난 결정을 뒤집은 것을 놓고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재 재판관 9명 중 6명이 이번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됐고, 이들 대부분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특히 유남석 헌재 소장은 지난해 9월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낙태죄 처벌에 대해 묻는 질문에 “임신 초기 중절은 전문가들 상담을 거쳐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추천된 김기영 재판관과 이석태 재판관은 이번 위헌 심판에서 헌법불합치에서 한발 더 나아간 위헌 판단을 내렸다. 이들은 “임신 제1삼분기(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며 다소 전향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조용호 재판관과 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 추천된 이종석 재판관은 합헌 결정을 내렸다. 두 재판관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는 중대한 공익이며 낙태죄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조 재판관은 이번 심판을 마지막으로 지난 18일 퇴임했다.

위헌 판단 이후…입법 쟁점은?
 

헌재가 낙태죄 위헌 판단을 내렸지만, 낙태죄가 폐지되고 새로운 법안이 채택되기 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입법 과정에서 낙태 가능 시점과 대상 등을 구체화하는 데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처음 발의된 정의당의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안이 여성단체의 반발에 부딪치는 등 시작부터 험로를 예고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15일 ‘자기낙태죄’(269조 1항)와 의사 등의 ‘동의낙태죄’(270조 1항) 조항 등이 담긴 형법 27장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형법 27장에 나온 ‘낙태의 죄’를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의 죄’로 바꾸고,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삭제했다. 또 모자보건법에서 임신 14주까지는 임부의 요청만으로 다른 조건 없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수정했다. 


이 대표는 이번 개정안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전향적으로 확대하는 낙태죄 폐지 법안”이라고 밝혔지만, 여성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특히 이들은 임신 주수에 따라 임신중절을 제한한 부분을 비판했다. 정의당의 개정안은 임신 14주까지는 제한 없이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했지만, 이후부터는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어야 한다. 임신 22주를 초과한 경우는 ‘보건의학적 사유’로 제한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이 개정안이 “여전히 임신중지를 법의 틀에 따라 ‘제한’하고 ‘징벌’한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헌재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낙태죄를 위헌으로 판단했는데, 주수를 제한하는 것은 이런 취지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높아진 여성계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도 문제지만, 종교계의 의견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헌재 결정 이후 낙태죄 폐지에 적극적으로 반대해온 천주교가 가장 먼저 유감을 표명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인간의 결정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지극히 인본주의적 사고에 근거한 결정에 대해서 규탄”한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의료계에서는 신념 등을 이유로 낙태 수술을 거부하려는 일부 산부인과 의사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개인 신념에 따라 낙태시술을 거부할 경우 환자들이 진료거부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계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정의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의 구체적인 입법 움직임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견이 첨예한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낙태는) 오랜 논쟁이 있었고 첨예한 갈등이 상존하는 문제”라며 “각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한 논의와 심사숙고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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