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 “국제법 위반”…추가 제재 방침

[스페셜경제=이정민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선포한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이곳에 러시아군 진입을 지시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위기와 갈등을 해결하는 미국과 서방의 외교적 노력을 저버리고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진입시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미국과 서방은 즉각 러시아의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제재를 예고했다.

크렘린궁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군에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것을 명령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다만 러시아군이 언제 어떻게 해당 지역에 진입할 것인지는 불분명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현재 19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우크라이나 동부와 북부, 남부에 집결시킨 상태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병력 파견을 명령하기 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한 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이들 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원조·지원을 약속하는 조약에도 서명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반군이 장악한 지역에 러시아군이 개입할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러시아가 친러시아 공화국 보호를 위해 우크라이나 영토에 군대를 진입시키고 우크라이나군이 이에 맞설 경우 전쟁이 시작된다. 이미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선 우크리이나군과 친러 반군 사이의 교전이 시작된 상태다.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가안보회의 긴급회의를 주재한 뒤 국영 텔레비전으로 방영한 장문의 대국민 담화에서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하는 법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오래 전에 내렸어야 할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의 독립과 주권을 즉각 승인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DPR 및 LPR 지도자들과 러시아와 두 공화국 사이의 우호·협력·원조에 관한 조약에도 서명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각각의 문서에 서명하는 장면도 영상으로 방영됐다.

돈바스 지역에 있는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의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은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속해 있던 크림반도를 주민투표 결과를 근거로 강제 병합하자 자신들도 독립하겠다며 자칭 DPR과 LPR 수립을 선포했다. DPR과 LPR은 독립을 선호한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를 상대로 무장 독립 투쟁을 해왔고, 서방은 러시아가 이들을 경제적·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비판해 왔다.

푸틴 대통령은 사전에 녹화된 대국민 담화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에게 존재론적 위협으로서 나토가 현재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자신이 내린 결정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까지 거론하며 오늘 날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근대적 산물이라면서 우크리이나가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영토를 물려받았음에도 소비에트 붕괴 이후 서방이 러시아를 봉쇄하는 데 이용됐다고 강변했다.

미국 등 서방은 일제히 비난을 쏟아내며 신속한 제재를 다짐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우리는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을 예상했으며, 즉각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칭 DNR과 LNR 지역에 대한 미국인의 신규 투자와 무역, 금융 지원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곧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키 대변인은 “행정명령은 우크라이나의 해당 지역 운용에 가담키로 한 인사들에 대한 제재를 단행할 권한을 당국에 부여할 것”이라면서 국무부와 재무부 등이 곧 구체적인 제재 내용을 공개하고 추가 제재도 뒤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각각 전화통화를 하면서 러시아의 행위를 규탄하면서 대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 내의 두 지역의 독립을 전격 승인하고 서방이 즉각 제재를 다짐하고 나서면서 우크라이나 위기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문이 더욱 좁아지게 됐다. 푸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중재에 따라 정상회담을 하자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고, 양국 외교장관이 오는 24일 만나 의제를 논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아야 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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