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을 통해 당선된 여야 300명의 국회의원이 30일부터 4년간 민의의 대변자로서 본격적인 의정활동에 돌입하지만, 20대 국회의 공식 개원일은 국회법이 규정한 시한인 다음달 7일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처럼 늑장 개원이 확실히 되는 이유는 원 구성을 둘러싼 진통과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금지 논란’으로 크게 세 가지다. 이로 인해 앞서 여야가 약속한 ‘협치의 정치’는 공수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많다.
우선 국회법에 따르면 총선 후 새로 구성된 국회는 임기 시작 후 7일 이내에 최초 임시회를 열어야 한다. 임시회 이후 3일 안에는 상임위원장 선출을 하게 돼 있다. 즉, 국회법을 기준으로 여야는 다음달 5일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단을 선출하게 돼 있고 7일 상임위원장 배정을 해야 한다.
다만, 현실의 사정은 다르다. 정치권은 13대 이후 단 한 번도 법정 시한을 지켜 원 구성을 마무리 한 적이 없다. '중이 제 머리를 깍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전 국민이 적용받는 법을 만드는 법을 만드는 국회가 장기간 국회법이 규정한 대로 원구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깝다는 말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딱히 없다.
과거의 악습 되풀이 <왜>
더욱이 20대 국회의 개원도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야는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배분, 상임위원 정수 조정 등 원 구성에서부터 애를 먹고 있다.
앞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여야 3당은 다음달 14일까지 원구성을 마무리 짓는 것으로 합의했지만 국회법을 지키지 못한 그 약속도 지켜질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20대 국회가 여소야대(與小野大) 체제로 시작하면서 원 구성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은 물밑에서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20대 국회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둔 29일까지도 상임위원장 배분은 물론이고 국회의장을 어느 당에서 맡을지조차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1당이 된 더민주가 국회의장을 맡을 가능성이 높지만, 새누리당이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등 핵심 상임위원회를 요구하고 있어 원구성 합의가 쉽지 않다. 더민주는 주요 상임위를 모두 새누리당이 차지하면 국회 운영이 한 당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상임위 놓고 각당 '동상이몽'
여야가 현행 18개 상임위원회 수를 유지하기로 의견을 모은 가운데 새누리당 8, 더민주 8, 국민의당 2의 상임위원장 배분으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그동안 여당이 갖고 있던 핵심 상임위원회가 갈등의 씨앗이다.
더민주는 경제민주화를 위해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중 적어도 하나는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국회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미방위원장도 더민주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반면, 지난 국회 더민주 소속이었던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은 국민의당이 맡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법정 시한을 지키기 어려워 보인다.
朴,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폭탄…후폭풍 예고
또한 20대 국회가 시작부터 전운의 먹구름에 휩싸인 두 번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재의 요구 때문이다. 국회법은 19대 임기 만료에 따른 법안 폐기 여부가 쟁점이어서 법률 해석을 놓고 격렬한 다툼이 관측된다. 20대 국회 시작부터 협치란 단어가 설 자리는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지난 27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관해 거부권을 발동해 야권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야권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20대 국회 초반 재의결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정국이 또 한 번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야권은 29일 논평을 발표하며 “국회법 개정안 재의 요구로 민생과 거리가 먼 정쟁으로 20대 국회를 시작하게 됐다”, “여당은 ‘박(朴)비어천가’를 부르며 청와대 기류만 살피지 말라” 등의 공세를 퍼부었다.
이와 다르게, 새누리당은 19대 국회 임기 내 제출한 국회법 개정안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동시에 사실상 자동 폐기됐다고 말한다. 19대 국회에서 가결한 법을 구성원이 다른 20대 국회에서 재의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시각인데 법적 해석을 놓고 여야 간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29일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도저히 여당이 양보할 수 없는 상임위를 모두 달라고 야당이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법 개정안 논란의 핵심인 ‘자동폐기냐 재의결이냐’ 여부는 국회사무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나, 국회법 개정안 변수는 원 구성 협상에까지 악영향을 끼쳤다. 그동안 여야는 운영위, 법사위, 예결위, 기재위 등 주요 상임위와 의장단 몫 배분에서 샅바싸움을 해온 바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바라보는 상반된 두 시선?
한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이견도 20대 국회의 지각 개원에 일조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국가보훈처는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는 기존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고 지난 15일 발표했다.
바로 나흘 전 박 대통령이 긍정적인 해결을 약속한 터라 5·18 관련 단체와 야당 등의 아우성이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있다. “5·18 행사 정신이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 것”이라던 박 대통령 논평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이번 결정은 두고두고 청와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 지도부 회동을 기회로 간만에 조성된 협력의 정치가 꽃도 피우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지지는 않을지 벌써부터 우려가 앞선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협치의 시금석”이라고 공언했던 더민주와 국민의당 등 야권은 협치에 함께할 수 없다면서 강력 반발했다. 야권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에 관한 해임촉구결의안 카드까지 불사했다.
5·18 기념행사를 이틀 앞둔 광주 지역 민심도 허탈감과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조차 유감을 표시하면서 정부에 재고를 요청하고 있어 거부권 파동의 여파가 한참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처음부터 이념 다툼의 진원지‘였던 것은 아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기념일이 정부 기념일로 제정된 1997년부터 민간주도행사에서 기념식 참석자가 제창으로 함께 부르는 노래였다.
반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다음해인 2009년 보훈처가 보수단체 주장을 받아들여 합창으로 공식 방침을 바꿨다.
보훈처는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고 있는 상황에서 참여자에게 의무적으로 부르게 하는 제창 방식을 강요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라면서 “국민통합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제창이 합창으로 바뀐 뒤 도리어 분열은 더 심화됐다는 견해도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전원책 변호사는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보수층이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건 아니다. 북한 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에 배경음악으로 노래가 쓰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황석영이 참여한 북한 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됐고, 영화 제목에 ‘임’이 들어가 있어 그 ‘임’이 누구냐를 두고 의문이 제기 됐었다” “황석영씨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해 보수층의 입장을 대변했다.
반면, 진보층에서는 ‘임을 위한 교향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시민군 대변인 역할을 한 윤상원과 그의 동료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라고 말하며 북한과는 상관이 없는 노래라고 주장하고 있다.
4‧13 총선 이후 정치권은 민심을 받들어 20대 국회가 협치의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금지 논란’과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파동, 마지막으로 국회 원구성을 둘러싼 여야 3당의 힘겨루기란 암초를 만나 시작부터 삐그덕거리는 형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