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
"장기적으로는 비둘기파 되고 싶어"
이창용 한국은행(한은) 총재가 기준금리 정책을 물가 변동 상황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 압력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통화 긴축을 옹호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여전히 성장 중시 기조를 재확인했다.
이 총재는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데이터를 더 봐야 되겠지만 오늘까지 봤을 때는 성장보다는 물가가 조금 더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물가 우려가 커지면서 5월 기준금리가 올라 갈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그는 "앞으로도 통화정책이 정상화되는 방향으로 가는 기조가 계속 되는데 금리인상 속도가 어떻게 될지는 데이터를 보고 결정해야 될 것 같다. 5월, 7월 연속으로 올릴거냐는 한 방향으로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는 5월 26일, 7월 14일로 예정돼 있다.
이 총재는 "4월까지 지표를 보면 성장도 우려되고 물가도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성장보다는 물가쪽이 우려가 돼 물가쪽에 방점을 두고 금리를 인상했다"고 말했다. 한은이 지난 21일 발표한 '2022년 3월 생산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생산자물가지수는 116.46(2015년 100기준)로 전월대비 1.3% 올라 3개월 연속 상승했다. 상승폭도 전월(0.5%) 보다 확대됐다. 2017년 1월(1.5%) 이후 5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동월 대비로는 8.8% 상승해 16개월 연속 상승세다. 생산자물가는 소비자물가지수의 선행지표로 일반적으로 1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4.0%로 봤다. 이는 아시아 선진국으로 분류된 8개국 평균인 2.4%보다 1.6%포인트 높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들과 아직 상의는 안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장면에서는 해외 요인이 우크라이나 사태도 그렇고 유럽 경제도 떨어지고 며칠 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전망도 보면, 성장률도 떨어져 네거티브(부정적)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반면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소비가 올라갈 가능성도 있어 성장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IMF는 최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5%로 낮춰 잡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교역 상대국의 성장 둔화, 상품 물가 상승, 중국 경제성장 둔화 전망 등 세 가지를 이유로 들었다. 그는 "성장률은 단기적으로는 해외요인에 의해 바뀔 수 있고, 국내 요인에 의해서도 바뀔 수 있다. 단기적으로 이런 성장률이 바람직하니 거기에 맞춰야 한다는 식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물가는 유가, 곡물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 물가가 4%에서 더 올라갈지 고민해 봐야 될 것 같다"며 "5월 결정의 큰 변수가 되는 것은 미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될 때, 또는 그 이상이 될 경우 자본유출이라든지 환율의 움직임이라든지 더 봐야 될 것 같다. 전반적인 기조로 봤을 때는 지금까지는 물가를 더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더 어떠한 속도로 금리를 변화시킬지, 또 아니면 방향 자체를 바꿔야 할지는 데이터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때 그때 금통위원들과 상황 판단을 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뜻에서 균형잡히고 유연성을 가지고 대처할 것"이라고 밝했다.
그는 "미국이 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다른 많은 국가들의 환율이 절하되고 있는데, 원화의 절하 폭이 다른 국가에 비해 심한 편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 채권수익률곡선 통제(YCC)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더 커져 환율 절하 폭이 큰 편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원화를 보면 1월 기준으로 보든 우크라이나 사태가 시작된 2월 말 기준으로 보든 달러 인덱스 상승한 것에 비해 원화 환율이 절하 된 정도가 거의 비슷하다.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엔화가 굉장히 많이 절하가 됐지만, 우리의 경우 다른 이머징 마켓(신흥시장)이나 유로화나 다른 기타 화폐에 비해서 크게 절하가 된 상황은 아니다. 그렇지만 당연히 앞으로 미국 금리가 더 올라가면 절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은이 금리 정책을 할 때 환율까지도 고려해서 하느냐는 부분은 특정 환율을 타겟해서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환율은 금리 뿐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 경상수지나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 등 여러 요인이 개입돼 환율은 시장 변수이지, 정책 변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 변수인 만큼 급격하게 쏠림 현상이 있거나 변화가 있을 때 조정하는 역할이나 환율 움직임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보고 있다. 그렇지만 환율을 타겟해서 금리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고령화 등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는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가 되고 싶다. 취임사에서 중장기적 이슈로 성장을 얘기했는데 반응을 보니, 단기적 금리정책 측면에서 성장을 강조한 것으로 얘기 돼 당황스러웠다. 장기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거나 창의성을 개발하는 것 등으로 생산성을 높여 고령화 진행중에도 성장률이 빨리 안 떨어지고, 고용이 창출돼 국민의 생활의 질이 올라가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이제는 민간 주도로 보다 창의적이고 질적인 성장을 도모해 나아가야 한다. 아울러 소수의 산업과 국가로 집중된 수출과 공급망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이 수반되겠지만, 이를 감수하고 구조개혁을 통한 자원의 재배분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구조개혁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날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 문제에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지금 디지털 기술발전에 따른 지식 집약 산업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인구고령화로 인해 청년 실업과 노인 빈곤, 그리고 지역간 불균형도 커지고 있다. 지나친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켜 우리의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킬 것이기에 이에 대한 해결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